욥기 QT

하나님을 섬기는 것의 유익이 무엇인고? (욥35:1~16)

다이나마이트2 2012. 12. 3. 22:48

2012년 12월 3일 월요일

욥기 35:1~16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

 

계속해서 엘리후의 변론이다.(1) 계속해서 욥을 질책하는 것 처럼 보인다.

욥은 앞에서 엘리바스, 빌닷, 소발 세 친구와 논쟁을 하면서

욥은 정직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징계를 받음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했었고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해서 얻은 것이 없다는 푸념도 했었다.

 

오늘 엘리후의 말을 통해서 욥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의 유익이 무엇인가?(3)

라는 의문에 대해서 네 생각에 네가 하나님 보다 더 의롭다 (2) 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싶어 한다.

 

아무리 욥이 동방의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자라고 해도

하나님보다 더 의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가끔씩 내가 실수하는 부분이 바로 이런 것이다.

아이들을 꾸지람을 할 때, 아니면 회사에서 하급자에게 야단을 할 때,

또는 정치인들을 술안주로 올려 놓을 때

나는 언제나 하나님이 되어서 정죄하고 판단하고 비판한다.

한번만 뒤집어 보면 나는 더 악한 생각과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으면서

내가 말할 때는 언제나 공의롭고 정의롭고 비판할 자격이 있는 것 처럼

한~~참 착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아무리 내가 의롭다고 해도 하나님 보다는 더 의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특히 비판하고 정죄할 때에는 매우 조심하자.

아니 아애 비판하고 정죄할 생각을 말자.

예수님은 배신한 제자들에게도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굽혀 먹이시고

다시 회복의 기회를 주시지 않으셨던가??? 아멘.

 

두번째로 말씀에서 배우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본다.

하나님은 나의 생각이나 행동에 영향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다. 아멘.

네가 범죄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6)

네 죄악이 관영한들 하나님께 무슨 상관이 있껬는가?(6)

네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7)

그가 네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는냐?(7)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이시다.

인간의 죄로 하나님을 어찌할 수가 없으며

인간의 의로 하나님께 무엇을 해 드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멘.

하나님은 나의 죄악이나 의로움에 영향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충분히 그러실 수 있는 분이시다.

절대주권자인신 그분을 날마다 바라보자. 아멘.

오직 하나님 만이 완전한 자유자이시고 소유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내 생명의 주인이시며 내 삶의 주인은 바로 하나님 이시다. 아멘.

다만 엠마오라 내려가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 보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깨닫지 못할 뿐임을 알자.

 

세번째 말씀에서 배우는 것은 고난 당하는 자가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어떠한 때에 기도 응답이 안되는가?

1. 나를 지으신 하나님을 내가 알아 보지 못할 때(10)

   우리에게 지혜를 주셨으나 창조주가 어디 계시는가?(11) 헛소리를 할 때

다시 말하면 믿음이 없으면 기도 응답이 될 리가 없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아멘.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힘입어 믿음으로 나아가자.

 

2. 악인의 교만을 인하여 거기서 부르짖으나 응락하는 자가 없고(12)

죄 때문에 기도 응답이 안된다는 말씀이다.

교만 때문에 부르짖어도 응답이 없다는 말씀이다.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약4:2)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약4:3)

 

3. 헛되이 부르짖음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13)

헛되이 부르짓은 즉 잘못 구함이 기도의 응답이 안된다는 말씀이다.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 여기에도 포함되겠구나.

 

결론적으로 욥이 헛되이 입을 열어 지식 없는 말을 했다(16)라고

엘리후가 꾸짖는 듯 하다.

따지고 보면 엘리후도 욥의 세 친구와 별로 다르지 않은 논리로 말하는 듯 하다. 

 

하나님 아버지

엘리후의 말을 통하여 나의 모습을 봅니다.

비판하고 정죄할 때 내가 언제나 하나님의 위치에 있음을 회개합니다.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않도록 성령님 다스려 주옵소서.

주님이 당연히 하나님의 위치이고 나는 그 자리에서 내려와

당신 앞에 무릎 꿇습니다.

모든 주권은 오직 당신에게 있음을 고백합니다.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주시고 내 생명의 주인이 되어 주옵소서.

고난 가운데 있을 때 기도 응답이 되지 않는 경우를 봅니다.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죄악 가운데 머물지 않도록 도와 주옵소서.

헛되이 부르짖지않도록 성령님 도와 주옵소서.

완전히 의로우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