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일 금요일
욥기18:1~21 사망에 이르는 악인의 운명
엘리바스와 욥의 두번째 변론이 끝나고
수아사람 빌닷이 이야기 한다.(1)
빌닷과 두번째 대화의 시작이다.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하나님께 용서를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하나님이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케 하실 것이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8:5~7)이렇게 말했던 자이다.
빌닷이 오늘 두번째 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첫번째 말했던 것 보다는
훨씬 직선적으고 비판의 강도가 세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운명(21)이라고 말하면서 욥에게 퍼 붓는 말이 장난이 아니다.
빌닷은 분명 고난 당하고 있는 욥을 위로하기 위하여 왔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서 빌닷이 하는 말에는 고난에 대한 위로의 말이라고 찾을 수가 없다.
오히려 비난하고 정죄하고 스스로에게 분노하고 있는 것 같다.
어찌하여 우리를 짐승으로 여기며 부정하게 보느냐?(3)
너 분하여 스스로 찢는 자야(4) 라고 책망한다.
스스로 찢는 자란? 교만으로 인해 스스로 파멸한다는 뜻일 것이다.
위로하러 왔지만 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정한 짐승으로 생각 할 만큼
스스로 모욕감을 느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깊은 고난 중에 있는 욥에게 이렇게 퍼부을 말은 아닌 것 같다.
빌닷이 욥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1. 악인의 빛은 꺼진 다는 것이다.(5) 맛는 말일 수 도 있다.
장막안의 빛은 어두워지고 그 위의 등불은 꺼진다는 것이다.(6)
2. 제발로 그물에 걸어 들어가 걸리고(8)
그 몸은 올무에 얽힐 것이며(9) 그를 빠뜨릴 함정이 기다리고 있다(10)
3. 악인은 굶주림에 시달리고(12), 질병이 그 피부를 좀먹고(13)
안전하게 살던 집에서 뽑혀 (14) 유황 불이 뿌려지는 처소에 살게 될 것이며(15)
4. 기념의 땅이 없어지고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자들도 없을 것이다(17)
유가족도 없고 후손도 없을 것이다(19)
5.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운명이 이렇다(21)
거의 저주에 가까운 말들을 막 퍼 붓고 있다.
빌닷은 왜 위로하러 왔다가 큰 고난 중에 있는 욥에게 이런 저주를 퍼붓나.
이것이 진정 친구란 말인가?
이런 친구라면 차라리 없는 것이 낫지 않을까?
왜 친구와의 논쟁에서 서로의 평행선을 주장하게 될까?
경청하거나 공감하는 마음이 전혀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친구의 말에 대해서 꼬리잡고 반박하기 위하여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빌닷과 같이 더 심하게 비판하고 정죄하게 된다.
나의 주장이 옳음을 관철시키고 상대에게 굴복 시키기 위한 방법이다.
자기 주장을 강하게 하다보니 비판의 강도는 더욱 세어진다.
회의를 할 때 흔히 실수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내 주장을 강하게 할 때 좀 무리를 해서 과장하고 공격적으로 하게 된다.
나의 의견을 이야기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절대 옳은 것으로 주장하는 것은 여러사람 힘들게 한다.
내 의견은 이런데 상대방은 다르게 생각 할 수 있겠구나
나도 틀릴 수가 있다. 상대방이 옳을 수도 있다고 존중하고 수용할 때
이런 강한 주장을 안 하게 되는데 빌닷은 엄청 강하고 주장하고 있다.
거의 확신에 찬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운명이 다 이와 같다라고......
빌닷은 고난 당하고 있는 욥을 향해서 너무 심하게 비난하고 있다.
왜 이렇게 심하게 비난 할까?
뒤 집어 보면 자기 안에 비난 받은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비난 받았기 때문에 상대방을 비난하게 된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비난 받으셨지만 사랑으로 용서하셨다.
하나님 아버지
욥을 위로하러 왔지만 위로는 커녕 자기 주장을 강하게 하는 빌닷을 봅니다.
비난하고 비판하는 빌닷의 태도를 봅니다.
친구 욥의 말에 대해서는 전혀 귀 담아 드지 않은 빌닷을 봅니다.
상대의 말에 대해서 귀 담아 듣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당신의 말씀에 대해서 경청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내가 비난 받았기 때문에 비난 하는 빌닷의 내면을 봅니다.
더 크게 비난 함으로 내 주장이 옳다는 것을 나타내는 교만을 봅니다.
내 삶이 비판적이지 않도록 도와 주옵소서.
비난하고 정죄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되게 하옵소서.
사랑으로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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