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QT

속지 말라. (고전15:29~34)

다이나마이트2 2008. 11. 26. 23:40

2008년 11월 26일 수요일

고린도전서 15:29~34 나는 부활하기 위해 삽니다.

 

계속해서 부활에 대한 말씀을 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성경의 말씀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의 말씀대로 3일째 되던 날 다시 살아 나셨다. 할렐루야.

그리고 게바에게, 12 제자에게, 500여 형제에게 일시에, 야고보, 모든 사도들과

바울에게도 보이셨다.

 

만약에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도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이요

믿는자는 모든 사람들 중에 가장 불쌍한자가 될 것이다 말씀하셨다.

 

육체적 부활을 부인하거나 믿지 않는 고린도 교인을 위하여

이렇게 논리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헬라 사람들은 잘 믿지를 못했나 보다.

 

그러면서도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일들을 행하고 있었다.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있었나 보다.(29)

 

만일 부활이 없다면 죽은 사람을 대신해서 세례받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29)

만일 죽은 사람들이 전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왜 그들을 위해 세례를 받는 것입니까?(29)

 

세례란?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고

예수 그리스도의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서 그리스도와 연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예식이다.

물 속에 들어감을 통해 옛 사람이 죽고 죄를 씻고 물에서 나옴을 통해서

예수님과 함께 부활 연합하는 상징을 가진 예식이다.

 

그런데 이 중요한 예식을 죽은 사람을 대신해서 행한다고 한다.

웃기는 일이다.

왜 그렇까?

부활이 없다고 믿으면서도 부활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모순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참으로 탁월한 논리를 가지고 고린도 사람들의 정곡을 찌르고 있다.

 

이 세상의 죽음이 모든 것이 끝이다 라고 확실히 믿으면

바울의 말 처럼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32)하고 살면 된다.

예배할 필요도 없이 주일이면 등산이나하고 운동이나 하고 마시고 취하고

흥청망청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살지 않았다.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고 살았고(30)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블어 싸우면서 살았다.(32)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나는 날마다 죽노라(31)

하면서 살았다.

왜냐하면 죽어야지만 부활이 있기 때문에....아멘.

복음을 위해서 날마다 죽으면서 사는 바울

부활의 소망을 가졌기에 목숨걸고 선한 싸움을 싸우는 바울을 본받아

부활의 분명한 소망 가운데 자녀에게 들려 주었던 천국의 아름다운 생활을

확실히 믿으며 가시밭길을 걸어도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살자. 할렐루야.

 

결론적으로 바울은 두가지를 권면하고 있다.

1. 속지 말라(33) 아멘.

    무엇에 속지 말라는 말씀인가?

    부활을 믿지 않는 악한 동무들을 믿지 말라 하신다.

2.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34) 하신다. 아멘.

    바울의 고백처럼 죄에 대하여 날마다 죽는 자가 되자.

    내 삶의 모습을 보고 부활의 소망을 전하는 삶을 살자. 아멘.

 

하나님 아버지

부활에 대한 분명한 소망을 주신 것 감사합니다.

부활이 없다고 믿으면서 말과 행동이 달랐던

고린도 교인들과 같이 모순 된 삶을 살지 않고

부활의 확실한 소망이 있었기에 죽음을 무릅쓰고

선한 싸움을 싸우며 나아가게 하옵소서.

부활이 없다고 하는 악한 동무들에게 속지 않게 하시고

깨어 의를 행하며 죄 짓지 않게 하옵소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