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QT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시28:1~9)

다이나마이트2 2007. 8. 1. 00:04

2007년 7월 31일 화요일

시편 28:1~9  여호와, 나의 반석

 

7월의 마지막날 아침에

아프카니스탄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나를 경악케 했다.

지난번 고 배형규 목사님에 이어서

새벽이슬 같이 젊은 청년 심성민군이 또 처형되었다는 소식이였다.

 

배목사님의 일로 이번 일은 완전히 종결 될 줄로 믿고 있고

또 그렇게 되기를 매일 기도해 왔는데 너무나 뜻밖의 참상이였다.

 

한편으로 하나님 이러실수가 있습니까?하는 원망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 가운데서 많은 것을 배우게 했다.

다윗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이 아프칸에 있는 형제자매 같은 상황으로 보인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1)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1)

 

다윗은 반역자 압살롬으로 부터 도망을 다니고 있는 상황인도 모르겠다.

엔게디 산악지역 어느 동굴에 숨어 있는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다윗의 일생 가운데 가장 비참한 상황에 있을 때가 아니겠는가?

 

비록 아들이지만 반역자로 부터 무고하게 위협을 받을 때에

무덤에 내려가는 자의 심정과 같은 이 때에

다윗의 태도가 나를 감동 시킨다.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2)

 

다윗의 기도하는 태도와 모습이다.

절실하지 않은 나의 기도의 모습과 태도와는 다르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주님 앞에 기도하는 자의 태도와 자세는 벌써 다르다.

성소를 향해,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는 기도

이런 기도 들여본 것이 언제였던가 싶은게

주님의 은혜라고만 좋아해야 하는가?

 

아침에 비보를 들었을 때는

도데체 우리 대한민국 정부는 무엇하나?

자국 국민 하나도 보호해 주지 못하나?

군대라도 동원해서 응징을 해야 하지 않나하는 감정이 앞섰는데

다윗의 모습은 그것이 아님을 보고 놀랐다.

 

저희의 행사와 그 행위의 악한대로 갚으시며

저희 손이 지은대로 갚아

그 마땅히 받을 것을 보응하소서(4)

 

그렇다 다윗은 직접 응징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원수 갚으려고 달려 들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그 행위의 악한대로 갚아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저희 손에 지은 대로 갚아 달라고 하나님께 심판을 맡겨 버린다.

 

오늘 내가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이다.

원수 갚는 것이 나의 몫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절대 주권이다.

심판자는 나의 감정과 울분이 아니라 하나님이 심판자 이시다. 아멘.

 

심판과 응징을 주님의 손에 넘겨 버릴 때 상황이 180도 바뀌어 진다.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 소리를 들으심이로다.(6)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다.(7)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7)

 

실제 상황은 조금도 바꿔진 것이 없다.

그러나 기도하는 다윗의 마음에 기뻐하며 찬송하는 노래가 있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며(1)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7)

여호와는 나의 방패이시기 때문이다.(7) 아멘.

 

아버지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원수 갚는 일이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악한 행위대로 갚으심이 주님의 절대 주권임을 고백합니다.

아프카니스탄에서 더 이상의 비보가 없게하시고

이슬람 선교의 시발이 되는 값진 순교가 되게 하옵소서.

아프칸 평화의 밀알되게 하옵소서.

7월의 마지막 날까지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하며

입찰에서 좋은 성과 내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8월에도 감사하며 찬양하는 한달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