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QT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잠29:15~27)

다이나마이트2 2006. 12. 28. 00:09

2006년 12월 27일 수요일

잠언 29:15~27 지혜를 갖추는 방편들

 

2005년 12월에도 2006년 12월에도 잠언을 묵상했다.

아굴의 잠언과 르므엘의 잠언이 남아있지만

오늘로써 솔로몬의 잠언은 마지막이다.

 

읽기는 쉬웠지만 삶으로 적용하기는 어렵기도하고

한편으로 힘들기도 했던 잠언 후련한 생각도 듣다.

 

솔로몬이 3,000개의 잠언과 1,005편의 노래를 불렀다고 했는데(왕상4:32)

29장까지 1절을 1개로 처도 850여개 밖에 안됨에 감사한다.

3,000개를 다 기록해 놓았으면 더 많이 찔릴뻔 했다.

(잠언(箴言)의 箴자가 바늘잠 혹은 찌를잠이라고 하니 말이다.)

 

잠언의 기록 목적이 지혜와 훈계를 알게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하며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

이라고 잠언 서두에 말씀하셨는데 얼마나 이 기록을 2년에 걸쳐서 읽어 오면서

얼마나 이 목적에 맞게 변해 왔는지 모르겠다.

 

특별히 오늘도 몇가지 마음에 새길만한 말씀들을 주시는데

첫째는 자녀에 대한 훈계에 대하여 말씀하신다.(17)

 

솔로몬이 청년기에는 아가서를 청장년기에 잠언을 노년기에는 전도서를 지었다고 할때

지금 청장년기에 자녀 교육(훈계)에 말씀하시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솔로몬은 자녀 교육에 성공한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 것 보면서 많은 위로를 받는다.

(아무래도 말씀하신 것과 솔로몬 자신도 행하는 것과는 괴리가 있었기 때문에)

 

몇 년 전의 일이긴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순예배를 하면 아이들이 얌전히

순예배를 함께 드리는 것은 불가능하고 아이들 끼리 만나서 신나게 노는데

그것을 불편해 하셔서 순 예배에 안나오신 분이 계셨다.

 

식당에서는 어떠한가? 요즘은 아이들 노리방 마져 만드어 놓은 식당도 많지만

조용히 분위기 있게 아이와 함께 식사 하는 것 쉽지가 않다.

떠들고 뛰어다니기가 십상이다.

 

채찍과 꾸지람으로(15)

네 자식을 징계하라고(17) 말씀하신다.

 

내 감정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라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의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의 자식을 키우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주님 그렇게 할 지혜를 주옵소서.

 

두번째는 언어에 대해서도 말씀하신다.(20)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오히려 미련한 자에게 희망이 있다.(20)하신다.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성급하게 생각없이 내 뱉어 버리는 말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말을 통해서 얼마나 감정을 상하게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는가?

찬양과 저주가 같은 입을 통해서 나오고 있으니....

오죽하면 미련한 자에게 더 희망이 있다 말씀하시겠는가?

 

상처주는 말, 저주하는 말, 생각없이 뱉어버리는 말이 아니라

생명을 주는 말, 희망을 주는 말, 새우고 격려하는 말, 축복하는 말,

깊이 생각하고 배려하는 말들을 하도록 입술의 훈련을 하자.

 

세번째는 감정에 대해서도 말씀하신다.(22)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분하여 하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22)

 

절제된 감정의 훈련을 하는 것 지혜자의 자르침이다.

노엽게 하는 형제와 화목하기란 성을 취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라 말씀하셨고

사도 바울은 아비들아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고

성내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참는 것이 사랑이라 말씀하셨는데

나의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여 화를 내고 분을 내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잘 절제된 감정의 훈련을 하자.

나는 잘 할 수 없지만 내안에 계시는 하나님은 잘 하실 수 있다. 아멘.

 

네번째는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신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25)말씀하신다.

 

잠언을 한 마디로 이야기 하라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이라고 하고 싶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이 곧 여호와를 의지하는 삶이요

바로 안전한 삶이라 하신다.

 

사실 하나님의 눈치 보기 보다는

사람의 눈치보며 사는 때가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의 비위를 맞추기 보다는 인간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때가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훈련을 하자.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대로 살아보는 훈련말이다.

사람에게 미움을 받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자. 할렐루야.

 

아버지

오늘도 너무 많은 말씀을 주시니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따라서 묵묵히 훈련하게 하시고

경건의 연습을 하게 하옵소서.

자녀 교육에 지혜를 주옵소서.

나의 감정에 따라 교육하지 않게 하시고

말씀에 의해서 교육하며 지혜롭게 징계하게 하옵소서.

절제있는 언어의 훈련을 하게 하옵소서.

절제있는 감정의 훈련도 배우게 하옵소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을 겸손히 배우게 하옵소서.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하셨으니

날마다 지혜를 배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