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QT

책망을 받으면서도...(잠29:1~14)

다이나마이트2 2006. 12. 27. 00:04

2006년 12월 26일 화요일

잠언29:1~14 지혜로 세우는 나라

 

지난 일주일간 성탄절 특별 QT를 마무리하고

오랫만에 다시 잠언으로 돌아왔다.

 

지난 잠언 28장에서도 악인과 의인에 대하여

반복적인 대조를 통하여 외형적인 결과를 극명하게 대조함으로

신앙의 실천적인 측면을 강하게 부각 시겨왔는데

 

오늘 29장에서도 계속해서 의인과 악인을 대조하고 있고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 의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의

반복적인 대조를 통하여 교훈하고 있다.

 

한 구절 한 구절의 교훈들을 내 삶에 적용해 본다면

내가 얼마나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그렇지 않는지

부끄럽기가 짝이 없다.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고집을 피우는 사람은

예기치 않은 패망을 당하고 구제가 불가능한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1)

 

고집하면 한 고집 한다고 자부 했는데

구제가 불가능한 인간이 되고 만다고 하신다. 아이고 주여!!!

 

책망이란 것도 사실 고집이 세어서 받는 꾸지람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집사 직분을 감당하는 것도 책망할 것이 없는자로 하라고 하셨는데(딤전3:10)

벌써 20세기에 안수를 받았음에도 아직 이 모양이니....주여!!!

 

지혜자는 말씀 하신다 책망을 잘 듣는 것이 지혜라고.

구제가 불가능한 상황이 오기 전에 지혜자의 말씀을 듣자. 아멘.

 

내가 하나님의 책망에 귀머거리가 된다면

하나님은 나의 기도에 귀머거리가 된다 하시니

누가 손해인가?

 

의로운 사람은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생각하여도

악한 사람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느니라.(7)

 

내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나?

사실 아버지의 마음은 잘 사는 자식 보다는 못 사는 자식에게 더 마음이 있고

등 따스고 배부른 아들보다는 춥고 배고파하는 자녀에게 더 관심이 있는 것은

인지상정인데 우리 하나님이랴 말해서 무엇하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눈은 높은 곳을 쫒아갔었고

더 큰집을 향해 가고 있고 더 좋은 차를 향해 가고 있고

지난 번 고교 동창들을 만났을 때 처럼 비교하고 내심 부러워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열등감 느끼고 하는 것이 내 삶이 아닌가?

 

지혜자는 말씀하신다.

가난한 자의 사정을 깊이 살피는 것이 의인이라고...

 

바꾸어 이야기 하면 가난한 자를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기준이

악인과 의인을 구별하는 기준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 나는 의인인가?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다투게 되면...그 다툼은 쉽게 그치지 않는다.(9)

 

다툼이란? 서로의 옳고 그름을 주장하여 싸우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툼을 피하라고 하신다.

다툼을 피하는 방법은 성령을 좇아사는 것이며

예수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하는 것이다.(딤전6:3)

장로가 될려면 다투지 아니해야 하는데(딤전3:3)....

 

아버지

한절 한절의 말씀이

나의 삶과는 거리가 참 많음을 봅니다.

책망을 받는 것도 그렇고

가난한 자의 사정을 살피는 것도 그렇고

다투는 것도 그렇고

온전한 자를 미워하는 마음도 그렇고

성냄도 그렇고, 분노함이 그렇고

거짓말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아버지

나의 본질이 이렇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자비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다시 한번 고백합니다.

주여 불쌍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