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1일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에 있는 애양원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했다.
예배 시간 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조용히 주변을 돌아 본다. 애양원교회 입구에 이런 안내 간판이 있다.
이리갈까? 저리갈까? 차라리 돌아설까? 3갈래 길에는 오른쪽으로 가라는 안내 표지판이 있다.
10여년 전에 양재 이천선교팀에서 호남선교 역사 여행을 하면서 우리팀이 숙소로 사용을 했던 토플하우스 이다.
"블렉 마운틴" 영상에 나오는 선교사님 중에 한국말로 인터뷰 하시던 바로 그 선교사님이시다.
토플선교사(도성래)는 1961년부터 1980년까지 20년 동안 애양원 원장으로 섬겼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을 떠날때 '이제 너희 나라에 크리스찬 의사들이 많으니 나는 떠난다'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프리카 케냐에서 애양원과 같은 의료 선교를 합니다. 지금도 매주 화요일에는 한국과 통일을 위해 기도한다고 합니다.
한센병자들은 말초신경에 감각이 없기 때문에 손이나 팔에 불씨등이 있어 살이 익어도 감각이 없기 때문에 문지르거나 하면 살이 다 벗어져버린다고 하신다. 이 분들과 삶을 함께하면서 감사하지 못하고 원망하고 불평했던 상황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게 되었다. 청각이 살아있고 두뇌로 생각을 할 수 있고 눈을 깜빡깜빡 할 수 있는 것 자체 만으로도 감사하게 되었다. 눈을 감을 수가 없어서 먼지등이 들어가서 실명하신 분들은 성경을 통째로 다 암송을 하셨다는 간증도 듣게 되었다. 몸이 불편해서 예배에 못 나오시는 분들을 위하여 도성마을 각 집에 스피커를 설치하여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말씀도 들었다. 영의 양식을 먹지 않는 자에게는 육의 양식도 필요 없다고 새벽 기도에 나오지 않으면 3끼 밥을 주지 않았다는 말씀에 찔림도 받았다. 말씀과 기도를 겸비하라고 권면해 주셨다. 믿음의 선배들은 나도 나병이 걸려서 너와 함께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그들을 사랑했다고 할 때 내게 사랑이 없음을 보고 울었다. 순교의 정신으로 믿음을 지켰고 하나님 말씀대로 삶을 살았던 신앙의 선배들을 보았다.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 안기까지 너무나 먼 거리처럼 느껴지는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 자장면 값 한끼면 최소 4,000원인데 아끼고 절약해서 복음 전하는 통로로 사셨던 믿음의 선진들을 만나는 귀한 여행 이였다.
애양원병원이다 혼자서 조용히 들어가 보고 싶었다.
애양원 병원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고하신분들의 기념비가 있다. 마치 길갈의 12돌 처럼 잊어 버리지 않기 위하여 비석에 오른쪽부터 선한사마리아인 생각이 나는 윌리 포사이트 선교사, 우월순(wilson) 선교사, 보이열 선교사, 도성래 선교사의 기념비가 있다.
애양원 병원에서도 아침에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예배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가까이 가지는 않았다.
이곳에 계신 환자분들이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속히 건강을 회복하시고 퇴원하시길 함께 기도한다.
애양원교회로 돌아가는 길에 치유의 숲 안내 간판이 있다. 과거에는 이곳이 한센병 환자들의 거쳐가 있었던 곳이였을 것이다.
지금은 작은 숙소들로 변경되어 실제 숙박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옛날에는 토굴이였을지 모르는 이곳이 이렇게 '치유의 숲'으로 세상에 지치고 힘든 몸과 마음을 이곳에서 치유하길 원하시는 분들은 한센병자들도 살았는데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고, 코로 냄새 맡고 숨 쉴수 있고, 입으로 먹을 수 있고 말 할 수 있는데 왜 낙심하며 원망하며 불평하는지 하루 정도는 아니 일주일 정도는 쉬면서 돌아 보면 회복이 될 것 같다.
비슷한 집이 여러 채 준비되어 있었다. 약 10여년 전에 이곳에서 숙박을 한 기억이 있다.
예배하기 전에 손양원 목사 순교 기념비 앞에서 손 목사님이 그러셨던 것 처럼 죽도록 충성하기를 다짐하는 마음으로 나 홀로 셀카도 찍어 본다. 조용히 혼자 예배 전에 이곳 저곳을 밟으며 한국 선교의 역사를 되돌아 보는데 마음이 이렇게 평안 할 수가 없다.
오전 10시 임용한 목사님의 인도로 애양원교회 예배를 시작한다.
시골의 작은 교회이지만 성가대의 찬양도 참 아름답게 들린다.
대표기도 : 강수웅 장로님께서 대표기도해 주셨다.
나라와 민족을 걱정하시며 기도해 주시는데 깊은 감동이 있다.
대표기도 이후에 주기도문을 함께 하는 것이 참 특이하게 느껴졌다.
성경봉독 : 마태복음 21장 28절에서 31절까지 말씀입니다.
신약성서 36쪽에 있습니다. 여러분 자리에서 일어서셔서 모두가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가 받들어 봉독해 드리겠습니다.
“28.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예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29.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30.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31. 그 둘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아멘 자리에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은 할렐루야 찬양에서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겠습니다.
찬양 : 할렐루야성가대
은혜로운 찬양에 감동이 됩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주 안에서 우리 만나게 돼서 너무너무 반갑습니다.
특별히 오늘은 온누리교회에서 장로님 부부들이 이렇게 오시고 또 많은 밖에 있는 분들도 오셔서 함께 예배드리는 것을 너무너무 뜻깊게 생각합니다. 우리 이렇게 주안에서 만났는데 인사하고 시작할까요?
“참 잘 오셨습니다”. 옆 사람하고 인사하실까요? “참 잘 오셨습니다. 축복합니다. 참 잘 오셨습니다.”
“축복합니다.” 우리 한 번만 더 옆 사람하고 인사하는데요.
“당신은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인사하실까요? “당신은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멘
설교 : '두 아들' 임용한 목사님
‘두 아들의 아버지’ 원래 이렇게 제목을 잡았다가 그냥 ‘두 아들’로 잡았습니다.
오늘 본문이 두 아들 이야기가 나오기에 그렇게 잡아봤습니다.
말씀에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아버지 하면 떠오르는 생각이 어떤 겁니까?
사람마다 다 그 생각이 떠오르는 생각이 다를 거예요. 술만 드시고 맨날 우리를 때리셨던 너무너무 무서운 아버지, 악마 같은 아버지, 또 버릇없이 굴고 까불면 매우 매우 엄하게 혼내셨던 그런 엄격했던 아버지, 때로는 이런 분도 계실 거예요. 너무너무 말이 없으셔서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분, 과묵하게 일만 하시는 분 저한테는 개인적으로 이렇습니다. 과묵하시지만 자그마한 챙겨줌으로써 자유로움을 진하게 드러내는 분, 여러분들은 다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다르실 겁니다. 어떤 분은 반대인 분도 계실 거예요. 너무너무 자상하셔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시는 아버지, 요리를 잘해 주신 아버지, 나를 잘 업어주셨던 아버지 다 다르실 거예요. 그러나 대부분 제가 봐왔던 그리고 많은 우리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버지는 어머니와 좀 다른 모습이 있습니다.
한 시를 저도 이 시를 들으면서 참 많이 공감했습니다. 한 시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분은 아실 거예요.
‘아버지의 술잔 안에는 눈물이 절반이다.’ 윤문원 시인이 쓴 시입니다.
전문보다는 부분을 가져왔습니다. 한번 읽어드릴게. 한번 생각해 보세요. 들어보십시오.
“아들 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 어머니는 열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번 현관문을 쳐다본다.
어머니의 사랑은 산소처럼 항상 우리 곁에 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깊은 사랑을 감춘 채 기다리고 있다.
위기가 닥치면 그제야 그 깊은 아버지의 사랑이 빛을 바란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도 안 하지만 혼자 차를 운전하면서 큰소리로 기도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웃음은 어머니의 웃음에 두 배쯤 농도가 진하다.
울음의 농도는 10배쯤 될 것이다. 어머니의 가슴은 봄과 여름을 오락가락하지만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울을 오고 간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아버지란 뒷동산의 바위 같은 이름이다. 시골 마을의 느티나무처럼 무대 위에 그늘을 베푸는 크나 큰 이름이다.”
참 뒷부분에 많이 공감했습니다. 돌아가신 뒤에 두고 두고 말씀이 생각나시는 분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 싶으신 분 어머니가 말씀하는 거는 누군가 그랬어요. 어머니는 스토리로 말한대요. 이야기를 얘기한대요. 그러나 아버지는 메시지로 말한답니다. 저는 그걸 공감했어요. 짤막한 말이고 어지간해서는 말을 안 하지만 아버지의 말씀에는 깊은 메시지가 담겨 있죠.
다 그러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나 제가 겪어왔고 제 부모도 그랬고 또 주변에 있는 분들을 보니까 많이 공감하시더라고요. 이게 바로 아버지죠. 그럼 어머니는 왜? 어머니 이야기는 안하냐? 이따 뒤에 하겠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어버의 주인이기에 이런 서설을 좀 해봤습니다. 특별히 저는 어버이 주일을 맞아서 우리 부모이신 우리 성도들에게 먼저 축하를 드리고요.
귀한 자녀들을 키우신 여러분들 참 잘 하십니다. 자식을 낳아준 것만 해도 어머니는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어릴 때 내가 배골아서 한두 시간 밥 먹고 있으면 또 울고 잠은 또 왜 그렇게 안 자는지 얼르고 달래고 잠 못 자면서 기저귀 갈아주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그렇게 키웠어요. 진짜 대단하더라고요. 낳아준 것만 해도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진짜 그렇게 낳아서 길러서 성장시키고 또 장성하게 키우기까지 얼마나 많이 애태우고 힘들어하고 걱정하고 염려하며 고생하셨습니까? 그런 어버이주일에 우리 성도들 생각하면 참 장해요. 먼저 축하를 드리고요. 여러분 오늘 어버이 주를 맞아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그래서 잠깐 나누려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 아들이 나옵니다. 두 아들이 나오는데 굉장히 독특해요. 예수님이 비유한 말씀에 한 아버지가 두 아들을 두었습니다. 아버지가 큰아들한테 얘야 가서 오늘 포도원에서 일을 좀해라 하니까 큰아들이 대답했어요. 네 아버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안 했어요.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똑같이 말했답니다. 애야 가서 오늘 포도원에서 일 좀 해다오 하니까 아 싫어요. 안 할래요. 그러나 뉘우치고 아버지가 오죽 했으면 나한테 부탁했겠냐 하면서 포도밭에 가서 일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묻습니다. 두 하들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되로 일하였느냐? 당연히 뉘우치고 가서 일하는 둘째 아들이죠. 너희들이 저 죄인들을 왜 성전에 데려오고 저 더럽고 추한 사람들 매국노요. 몸파는 사람이오, 악한 사람들을 성전에 부정타게 데리고 온다냐 그렇지만 뉘우치고 돌아온 저들이 참으로 아버지 뜻을 행하는 자가 아니겠느냐 하신 말씀이에요. 오늘 본문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내용은 잘 알고 있고요. 이 본문을 풀어서 얘기하자면 이렇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대놓고 하나님을 무시하지만 예수 믿는 우리는 은근히 하나님을 무시한다 했어요.”
맞습니다. 누가 더 죄질이 중합니까? 물론 똑같은 죄입니다마는 그래요. 알고도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 더 무겁습니다. 우리가 그래요. 우리가 알고서도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사랑을 저버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늘 해왔듯이, 하나님은 다 이해하셔 이런 선한 의도의 죄는 다 알고 계시지 죄가 죄인들도 무겁게 여기지 아니하고, 바로 이 불순종했던 대답은 잘하지만 불순종했던 아들을 우리에게 투영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여기에서 질문해 봤습니다. 이 두 아들을 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것을 나누고 싶습니다.
두 아들을 보는 아버지 하나는 대답은 잘 하지만 은근히 하나님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는 아들 또 하나는 배은망덕하고 버릇없이 의도적으로 대놓고 싫다고 말하는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아들, 두 아들을 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떨까요? 성경에는 은근히 두 아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창세기 4장에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이 나오고 ‘야곱과 애서’가 나오고요. 여러분이 잘 알죠? 우리 애들 보듬어주고 안아주고 성도들도 손자 보는 거 좋아하고 우리 성도들 안아드리는 거 저 좋아해요. 제가 그런 사랑을 받았기에 저는 자연스러워요. 부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인을 전혀 본인이 손잡아 보이지도 않고 겉으로 대화만 하고 쌩하니 무슨 정이 있겠어요? 어머니 어깨도 주물러 드리고 아버지 안마도 해드리고 어린애들 그런 거는 청소년 애들 어린애들만 하는 겁니까? 아니요. 나이가 많고 연세드신 노인 된 부모님께도 해 주세요. 부모님 마음은 하나님이 아버지께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하는 마음은 이런 겁니다. 함께 있는 거 크게 성공하고 큰 도움을 주는 것도 물론 좋죠. 아들이 집에는 오지 않고 돈만 많이 붙여줘도 좋다 좋다 하면서 우리 아들이 너무너무 바빠서 못 오지만 이렇게 한다면 사랑할 수 있는 그러나 자주 온 것만 하겠어요. 자주 자주 와서 어머니 뵙고 그것만 하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도 마찬가지라고 저는 봅니다. 표현하고 대화하라 안마도 해드려라. 5월 8일 어버이주일이었죠. 물론 자녀들이 바쁘니까 연휴날 먼저 와서 우리 성도 여러분 식사도 같이 하고 얼굴도 봤을 겁니다. 잘했어요. 우리 자녀들 잘한 거예요. 저는 우리 성도들에게 몇 년 전에도 부탁드렸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자녀들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다른 거 만사 제쳐놓고 엄마 생일에는 꼭 와라. 엄마 생일 챙겨라. 아빠 생일 꼭 챙겨야 한다. 가르치셔야 돼요. 야 뭘 하냐 바쁜데 오지마 그러면 신경 쓰지마. 몰라요. 안 배우면 모른다니까요. 의사가 그럴 줄 알아요. 엄마는 늘 생선 먹을 때 머리를 좋아해 그런 줄 알아요. 저도 그랬습니다. 누군가 저한테 가르쳐줘서 알았어요. 엄마도 입이 달아 아빠도 생선 몸통아리 먹을 줄 안다. 가르쳐 주어야해요. 저 우리 젊은이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5월 8일날 어떻게 보냈습니까? 부모님의 가슴에 꽃이라도 달아드리셨는지요. 우리 청소년 젊은이들에게 간곡히 부탁해요. 여러분이 버는 알바해서 버는 돈, 여러분이 직장생활에서 버는 돈 어버이 주일에 근사한 곳에서 식사해 드리고 선물 주십시오. 그러려고 돈 버는 거예요. 돈은 그렇게 쓰는 거예요. 그냥 고맙다고 말만 하지 말고 돈은 그렇게 쓰라고 버는 겁니다. 그렇게 쓰는 거예요. 근사하게 식사했는데 고맙습니다. 표현해 드리고 좀 남사스럽더라도 해봐요. 해 보면 친근해 집니다. 저는 제가 살아오면서 진짜 잘했다는 것이 극히 적지만 그중에 하나가 있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한 그것이 진짜 잘 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2학년 때였어요. 그날은 학교 가는 날인데 어머니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여전히 이제 읍내로 학교를 가야 하니까 어머니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밥을 하셨어요. 솥단지에 늘 그랬죠. 근데 이제 학교 가기 전에 아궁이에서 불대고 있는 어머니 옆에 서 있다가 왜 그랬는지 그런 표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번도 안 했지만 표현도 못했지만 어머니 고맙잖아요. 그래서 “어머니 사랑합니다.” 이것을 해야겠는데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 부끄러워가지고 창피하고 부끄럽고 부엌에서 이렇게 아궁이에 불을 떼고 고생하시는데 진짜 어머니 얼굴도 못 보고 들어가는 소리로 ‘어머니 사랑합니다’ 하고 얼굴 빨개져가지고 있는데, 글쎄 어머니 얼굴이 활짝 피면서 무지 웃으시더라고요. 좋아하시더라고요. 이제 다른 기억은 몰라도 그때 어머니가 굉장히 좋아하시는구나 라는 걸 알았습니다. 아들이 부끄러워하면서 그 고백을 하는 게 좋으셨나 봐요. 성도 여러분 부모가 계신 우리 성도 여러분 부모님은 이렇게 여러분을 좋아하십니다. 대화하고 주물러 드리고 내가 할 일 내가 알아서 하지만 그래도 물어보고 아버지 이거 어떻게 할까요? 아버지가 어떻게 하면 좋아요 그러면 좋아하세요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품 안에 있어서 하나님께 여쭙고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일을 만나든 하나님께 알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따라서 그 안에서 사는 삶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품 안에 가시기 하나님이 원하신다고요. 성공해서 잘해서 좋은 거 드리는 것도 좋지만,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사랑을 잊고 먹고 살아가는 것. 하나님의 사랑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서 하나님 품 안에 있고 하나님 안에서 떠나지 않는 그 안에서 하나님과 복되게 살아가는 성도들 되기를 축원합니다.
끝으로 두 번째는요. 동생을 찾아가라입니다. 따라 하겠습니다. 동생을 찾아가라.
막대 먹은 자식이 있다면 그 자녀들은 다 너 때문에 진짜 엄마 아빠 고생한다. 너 왜 그러니? 라고 하죠. 근데 여러분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요? 오늘 두 아들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아프지만 사실요. 열 손가락 깨물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손가락 나름이에요. 상처 입고 겁나고 약한 손가락은 살짝 깨물어도 더 아픈 법입니다. 부모님 여러분들이 걱정하고 염려하는 자녀는 어떤 사람입니까? 잘 사는 자녀예요. 건강에 든든하게 서가는 자녀요. 자랑스럽고 좋죠. 그러나 속썩이고 방황하고 아파하고 가난하고 헐벗은 자식 보면 부모는 더 마음이 쓰이고 아픈 겁니다. 원하는 게 뭘까요? 그 부모가 그래요. 잘나가고 잘 사는 자녀에게 야 니 동생 좀 도와줘라. 니 오빠 좀 도와줘라. 이게 부모입니다. 어디에 나와 있어요? 누가복음 15장에요.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큰아들을 향해서 아버지의 말이 나옵니다. 얘야 니 동생은 잃었다가 찾았다. 오늘 기쁜 날 아니냐? 사실요. 이 집 나간 동생을 찾는 것은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예전에는 내가 부모라면 나는 둘째 아들을 찾아갈 것이다. 둘째 아들 찾아가서 얘야 가자, 괜찮아 이렇게 살고 이제 괜찮아 집으로 가자. 제가 부모라면 저는 둘째 아들을 찾으러 갈 것이다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남아 있는 큰아들의 문제가 뭐예요? 그렇게 아버지가 둘째 아들을 찾아와도 형과의 관계가 남아 있어요. 막 되먹은 자식 아버지 재산을 아버지가 살아계신데 유산 물려달라고 다 팔아먹고 무슨 낯짝으로 형과 동생과 그 간극 어떻게 할 거예요? 정답은 형이 찾아가야 합니다. 동생을 찾아가야 돼요. 형이 왜 그러죠? 아버지의 마음을 알면 아버지가 매일매일 동생을 기다리는 걸 알면 형이 찾아가야 돼요. 찾아가서 ‘야 아버지가 얼마나 기다리는지 아냐? 같이 가자’ 괞찮아 가자. 그러면 안 된대요. 팀 켈러 목사님이 그랬습니다. ‘저와 우리 죄 많은 우리 인생을 위해서 맏형이신 그분이 찾아오셨어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오셨어요. 하나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지 가자, 들어와 괜찮아 그게 십자가의 메시지였습니다.“ 저는 가인과 아벨도 그렇지만 에서와 야곱에서 가끔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야곱이 형의 축복을 가로채서 멀리 멀리 수백 킬로 떨어진 외가집으로 도망갔잖아요. 만약에 애서가 어머니, 아버지 품에 있던 애서가 동생을 그리워하는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을 알고 스스로 찾아가서 야곱에게 찾아가서 ’야 괜찮아, 엄마 아빠가 얼마나 널 기다린 줄 아냐? 가자‘ 해서 데려왔다면 얼마나 아름다웠겠어요 그죠?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잃어버린 양, 하나님의 아픈 손가락을 찾아가기를 원하세요. 같이 믿노라 하면서도 천천히 기억 가운데 방황하고 하나님을 떠나 죄악 속에 헤매며 방황하는 우리 지체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고난 중에 눈물짓고 있는 우리의 이웃들, 영혼들 잃어버린 동생이에요. 찾아오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국제시장‘이라는 영화를 보신 기억이 있으신지요? 일사 후퇴 때 동생을 잃어버리고 아버지가 동생을 찾아가면서 마지막 그 큰아들의 부탁이었던 것. 동생들을 잘 부탁한다. 그리고 분단이 되어서 영영 못 만나게 되었죠. 그러나 장남은 그 아버지 말씀대로 6.25 때 또는 외국에 가서 수많은 일을 겪으면서 동생들을 살피고 잃어버린 동생을 이산가족으로 만났던 그래서 늙고 늙은 아들의 이야기 아들이 마지막 대사가 아버지입니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저 이만큼 했으면 잘했죠‘. ’근데 아버지 저 너무 힘들었어요‘ 했던 그 마지막 부분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요.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따라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잃어버린 권세를 찾아가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하나님이 참 좋아하는 모습입니다. 어버주일을 맞아서 저는 이렇게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부모님과 친근히 대화하고 존경한다 라고 또 하나는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가라. 그것이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겁니다. 아까 왜 아버지만 얘기만 한다냐? 어머니 얘기 안 한다냐? 어머니에 관한 글 하나 읽어드리고 마무리할까 합니다. 여러분도 또 잘 아실 거예요. 서울여대 사랑의 엽서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어느 여학생의 글입니다. ”어머니“ ’ 나에게 티끌 하나 주지 않은 걸인들이 내게 손을 내밀 때면 불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전부를 준 어머니가 불쌍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 나한테 밥 한 번 사준 친구들과 선배들은 고마웠습니다. 답례하고 싶어서 불러냅니다. 그러나 나를 위해서 밥을 짓고 밤늦게까지 기다리는 어머니께 감사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드라마 속 배우들, 가정사에 그들을 대신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일상에 지치고 힘든 어머니를 위해 진심으로 눈물 흘려본 적이 없습니다. / 골방에 누워 아파하던 어머니의 걱정은 제대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친구와 애인에게는 사소한 잘못 하나에도 미안하다고 사과를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잘못은 셀 수도 없이 많아도 용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 세상 떠난 후 이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너무 많은 것을 알지 못해 죄송합니다. 얼마나 많이 공감되는 얘기인가요?
어버이 주일을 맞아서 안 해봤다면, 그동안 해왔지만 다시 한 번 따뜻한 마음으로 ‘어머니 아버지 고맙습니다’.
한번 표현해 보면 어떨까요? 하나님 교회를 향해서도 하나님 얼마나 많이 참으셨습니까? 말 안 듣는 저를 그래도 참아주시고 은혜 주신 하나님 고맙습니다. 이 표현해 보면 어떨까요? 그렇게 복되게 아버지 품 안에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들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참 훌륭한 부모님을 주셨습니다.
좋은 부모님 만난 것을, 수고하고 계신 우리 부모인 우리 성도들을 위로하여 주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서 아버지 품 안에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저희들 되게 하시고 하나님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이 뭔지도 알았습니다.
집 나간 동생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으니 하나님의 큰 사랑으로 하나님 우리는 동생을 찾아 나가는 사람들 되게 해 주시옵소서 감사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봉헌 및 봉헌기도
헌금 바구니를 돌리는 것이 참 오랫만에 생소했고, 감사헌금, 선교헌금, 십일조 헌금 한분한분 호명하는 것도 특이했고,
무엇보다 예물을 높이들고 강복 기도하시는 모습은 마치 거제를 드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시골교회들은 대부분 이렇게 하시는지 잘 모르겠는데 참 특이하게 느껴졌다.
특송 : 1530장로 부부의 특송이 있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찬양을 하셨는데 왠 만한 성가대 보다 더 잘하시는 것 같다.
온누리교회 장로합창단으로 소개가 되었다. 하하하 1530장로회가 대표 장로단인가(?)
친교 찬양이 참 많아서 좋다.
평화 하나님의 평강이 찬양을 부르며 서로를 축복한다.
축도 : 임용한 목사님
예배를 마치고 애양원교회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어 주신분께 감사한다.
예배 이후에 순천으로 식사하는 길에 율촌에 들러 우리 온누리의원을 운영하시는 장로님 병원에 들러 함께 축복하며 기도했다.
서울에서도 돈 많이 벌고 여유롭게 생활하실 수도 있으신 장로님 인데 하나님의 부르심의 사명을 따라 시골에서 수 많은 어른들의 건강을 섬기시고 계신분으로 정말 존경스런 장로님 부부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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