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0 장로회

순교기념관 / 박물관 2025.05.10

다이나마이트2 2025. 5. 11. 23:09

1530 장로회 동기 장로님들은 위대한 순교신앙 숨결과 정신을 가까이서 익히며 배워 갑니다

손양원 목사님 순교 기념관 앞에서 기념사진.

하나님 아버지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분들이 순교자의 신앙을 따라 믿음을 지키고 계승하며 발전하게 하옵소서.

주님 입술로는 주님이라 부르지만 마음으로는 멀지감치 떨어져 있는 내 모습을 봅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회개의 영을 부어 주시고 복음의 빚진 자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옵시고 그 빚 갚으며 살게 하옵소서.

이 민족 가운데 귀한 믿음의 순교자를 허락하셔서 감사합니다.

순교자의 신앙 본 받아 살아가는 내 삶 되게 하옵소서.

한국 교회를 향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분별하게 하옵시고

진실과 거짓 가운데 물질, 권력과 주님 가운데 선택할 것을 올바로 선택하고 결단하게 하시고

착하고 충성 된 종아 칭찬 받는 우리 모두 되게 하옵소서.

신앙의 본이 되고 모델이 되신 손양원 목사님을 이 땅에 허락해 주심을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그 믿음 본받아 결단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수 애양원교회 예배당 입구에 손양원목사 순교 기념비가 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니라"(요한복음 12:24) 아멘.

*** 나의 부흥시 먼저 읽을 것 ***

1. 하나님의 지능을 의뢰하고 나의 지식을 믿지 말 것

2. 주님을 나타내지 않고 자기를 나타낼까 삼가 조심 할 것

3. 성경 원리를 잘 모르고 내 지식되로 거짓말 하지않게 할 것

4. 간증시에 침소봉대하여 거짓말 되지 않게 할 것

5. 내 한마디 말에 청중 생명의 생사 좌우 관계 있음을 깊이 알고 말에 조심도 열심도 충성도 다할 것

6. 음식과 물질에도 크게 주의 할 것이니 

1) 주님 대신 받는 대접이니 받을 자격 있는가 살피라

2) 배 위하여 입맛에 취해 먹지 말고 일하기 위하여 먹으라

3) 물질 선물에는 하등의 관심을 두지 말라.

오 주여!!

이 시간 주 앞에서 범죄자 되지 말게 해 주시고 사람앞에 비 없는 구름같이

은혜끼치지 못하고 돌아갈까 주의하게 하소서.

또 내 유일한 참고서는 성경 66권 되게하시고 내 가르침의 지능은 오직 기도되게 하소서. 아멘,

총회 한국기독교 사적 지정서가 붙어 있다. 이곳 신풍리 애양원 일대가 전부 역사 유적지 인 것 같다.

손양원 목사 순교지, 애양원 역사 박물관 (구 여수애양병원), 예수 애양병원 및 행정보육원, 선교사 기념비, 토플하우스 (구 한성신학교) 전체가 기독교사적지로 지정이 되어 있는 모양이다.

한센병 자료관 있다. 1926년 광주로부터 옮겨온 R.M Wilsom(우월순) 원장이 이 언덕에 한센병을 위한 병원을 세우고 명심대라고 하였다. 병은 마음에서 오는 것이므로 병을 고치려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우선이라는 전통적인 생각을 나타낸 것이다. 그 후 2000년 6월에 병원의 발전과 선교사들의 사역을 기념하는 역사관으로 개축하였으며, 2014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원들의 도움으로 한센병 역사와 변천을 알 수 있는 자료관을 신축하였다고 한다.

한국 기독교사적 제49호 인증판

애양원 역사 박물관, 예수 애양병원, 토플하우스 전체가 2025년 5월 9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인정을 받았나 보다.

1978년 6월 21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은 모양이다. 나는 대한민국 훈장을 받은 것으로 착각을 했다.

1959년 이래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의 나환자, 불구자, 소아마비 아동등 불우한 사람들의 치료와 복지를 위한 여러가지 활동을 해오신 귀하의 노고에 대하여 본인은 다시 한번 사의를 표하며 이를 높이 치하하는 바입니다. 우리 국민은 귀하께서 남기신 공헌을 오래토록 기억 할 것입니다. 인류를 위해 봉사하시는 귀하의 숭고한 노력에 큰 성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대통령 박정희 이렇게 적혀 있다.  당시의 주소는 전라남도 여천군 율촌면 신풍리 였던 모양이다. 도성럐 박사님께 청와대에서 보내 온 모양이다.

카메라에 관심이 있으니 카메라가 유물 가운데 눈에 먼저 들어 온다. 캐논, 미놀타 옛날에 갖고 싶은 카메라 였었다.

아날로그 시대였으니 필림통들도 뒤 쪽에 보인다. 지금은 망해 없어져 버린 후지 필림 통이다.  이제는 박물관에나 와야 볼 수 있는 희귀한 물건이 되었다.

애양병원 역사관

1926년 광주로부터 옮겨온 Wilson (우월순) 선교사는 이 언덕에 한센병을 위한 병원을 세우고 "명심대"라고 하였다. 병은 마음에서 오는 것이므로 병을 고치려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우선이라는 전통적인 생각을 나타낸 것이다.

그후 2000년 6월 병원의 발전과 선교사들의 사역을 기념하는 역사관으로 개축하였으며 2014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원들의 도움으로 한센병의 역사와 변천을 알 수 있는 역사 자료관을 건축하였다.

귀하신 목사님이 열강을 해 주셨다. 문제는 들어도 또 들어도 자꾸 잊어 버린다.

 

손양원 목사님 삼부자 묘소 앞에 왔다.

손양원 목사 삼부자 묘  (한국기독교사적 제6-1호 '손양원목사 삼부자 묘'의 사적지 지정)

삼부자가 순교한 일은 물론 순교자의 가족이 한 곳에 안장된 것은 드문 일이다.

현재 이 묘역에는 1948년 10월 21일 순교한 손양원목사의 장남 동인과 차남 동신의 묘 2기가 앞에 있고, 뒤에는 1950년 9월 28일 순교한 손양원목사와 1977년 11월 26일 사망한 정양순사모와의 합장 묘 1기가 있다.

손양원목사는 두 아들을 앞서 보내며 "내가 죽거든 이곳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손양원 목사님에 대한 몇 가지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다.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피살된 '손양원' 목사의 순교 이야기가 상당히 '오염'된 것임을 그의 막내 아들 '손동길'목사가 직접 안내를 하며 설명을 했다. 무슨 문제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재산 분쟁도 좀 있는 듯하고 애양원교회와 손 목사님의 후손들 간에 약간의 문제들이 있는 것 같다. 사랑의 원자탄이 참 무색해 지는 것 같아서 자세한 설명은 듣고 싶지 않았다.

손양원 목사상 이라고 적혀 있다. 순교자 기념관 앞에 있는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작은 기념비 이다.

순교자 라는 시비가 있다. 손양원 목사를 기리며 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손양원목사 순교 기념관 왼쪽에 이런 이런 머릿돌이 있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레19:18, 마22:39) 말씀인 것 같다. 

손양원목사 순교 기념관 오른쪽 머릿돌은 이렇게 적혀 있었다. (1993년 3월 30일로 적혀 있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시118:22, 마21:42절 말씀 같다)

전시관에서 무엇을 볼 것인지 분명하게 안내를 해 놓고 있었다.

1층에 1전시실부터 3전시실까지 지하1층에 4전시실부터 7 기념품점까지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전시관 개요를 일목요연하게 적어 놓았다. 1993년 4월 27일에 개관이 되었다.

목적이 분명하다 손양원 목사 순교 신앙계승과 순교 자료의 보존 및 국내외 복음전파 선교이다. 

목적이 분명하면 방향을 잃지 않게 된다. 열정이나 의욕이 줄지 않게 된다. 목적을 상실한 이 시대에 이 목적이 우리 신앙에 분명한  나침판이 되길 기도한다.

손양원목사는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요양소였던 애양원의 애양원교회에서 구호활동과 신앙 활동을 펼쳤고, 1940년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여수경찰서에 구금되었다. 1948년 여순사건 당시 장남, 차남이 안재선 등 폭도들에게 순교당하였으나 폭도인 안재선마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양아들을 삼았으며 6.25 전쟁 때 모교에서 끝까지 남아 목회를 하다가 1950.9.13 공산군에 투옥되어 9.28일 여수시 미평동에서 순교당하였다. 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은 솔로몬의 부귀와 지혜보다 욥의 고난과 인내를 더 고귀하게 여겼던 손양원목사의 깊은 신앙심과 끝없는 사랑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졌다. 기념관에는 성화 7점, 사진 액자 98점, 옥중편지 등 8점, 기타 유품 5종 100점을 소장하고 있다. 주변에는 손양원목사 기념비 및 3 부자 묘지, 모교로 목회했던 성산교회가 있어, 매년 전국에서 기독교 신자들의 순례 코스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손양원 목사님은 사랑의 사도, 복음전도자, 경건한 사람, 한센인의 친구, 원수를 사랑한 자, 의의 면류관을 쓴 순교자로 기록하고 있다.

여순 사건 당시 손목사의 장남 손동인군은 순천사범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기독학생회 회장을 하면서 좌익들의 활동을 저지하고 복음전파를 통해서 학원의 평화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기독학생 활동을 통한 좌익과의 대립등이 원인이 되어 여순사건때 좌익 학생들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던중 복음을 전파하다가 동인 동신 형제가 1948년10월21일 순교했다. 손목사는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있던중 1948년 10월25일 동인,동신의 순교 소식을 듣게 되었고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했다.그 기도의 내용은 동신 동신을 죽인 원수를 살려 달라는 것이었다.

동인 동신은 죽어서 천국갔는데,동인 동신을 죽인 원수는 지금 죽으면 지옥갈것이 분명함으로 그 원수를 살려내어 예수를 믿어 구원 받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손목사는 기도한데로 하나님의 은혜로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살려내 양아들로 삼아 동인 동신 대신해서 그들의 못다한 일을 다하라고 이름을 손인신이라 지어주었다.손목사는 두아들의 순교와 그 두아들을 죽인 원수를 살려내 양아들로 삼게 된 것을 분에 넘치는 복이라고 했다.

 

그는 두 아들의 장례식장에서 답사를 통해서 그 분에 넘치는 감사를 9가지로 고백했다.

손양원 목사님의 9가지 감사

첫째. 나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할 자식들이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 중에서 어찌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 주셨는지 그 점 또한 주님께 감사합니다.

셋째. 3남 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이 함께 순교했으니 더욱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했으니 더욱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여덟째. 내 두 아들 순교의 열매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합니다.

아홉째. 이같은 역경 중에서 이상 여덟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합니다.

예수 중독자

나 예수 중독자 되어야 하겠다.

술 중독자는 술로만 살다가 술로 인해 죽게 되는 것이고, 아편중독자는 아편으로 살다가 아편으로 주게 되나니,

우리도 예수 중독자되어 예수로 살다가 예수로 죽자.

우리의 전 생활과 생명을 주님 위해 살면 주님이 부활된다. 주의 종이니 주만위해 일하는 자 되고 내 일 되지 않게하자. 아멘.

당신은 이미 땅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조용한 기도실도 있었다. 오른쪽 벽에 이렇게 적혀 있다. "당신은 이미 땅의 사람이 아니였습니다."

오늘 당신을 말하는 것은 너무 어설퍼 오히려 누가 됩니다./ 버림받은 나환자들 더러운 피고름 당신의 입술로 빨아 낼 때 당신은 이미 땅의 사람이 아니였습니다./ 두 아들 동인 동신이 피투성이로 쓰러져 순교제물 되던 날 자식하나 바친 것도 영광인데 둘씩이나 순교제물 받으시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눈물흘리실 때 당신은 이미 땅의 사람이 아니였습니다. / 보기만 해도 소름 끼치는 두 아들 난사한 사람 양자로 삼던 날 사랑의 원자탄은 터지고 이 땅에 십자가로 서서 기뻐 하늘 보시던 당신은 당신은 이미 땅의 사람이 아니였습니다. / 오늘은 남해가 보이는 애양원 동산에 당신 마저 순교자 되어 두 아들과 나란히 누우셨을 때 당신은 이 땅이 차마 감당치 못한 사람이였습니다./  오늘 당신을 말하는 것은 너무 부끄러워 오히려 누가 됩니다./ 

 

왼쪽에 적혀 있는 글은 "우리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손양원 목사님 순교 50주년에 김성영 장로님이 쓴 글이다.

우리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말로만 사랑하라고 설교하지 않고 사랑의 생활로 본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당신을 존경하는 것은 말로만 겸손하라 가르치지 않고 빈 마음 낮은 자리를 즐겨 찾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당신을 사모하는 것은 말로만 헌신하라고 교훈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끝까지 감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당신을 기리는 것은 예수님을 본받아 말씀과 기도와 겸손과 사랑으로 영원한 순교 제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위 사진의 왼쪽 아래 성산교회에서 진입광장, 명상의 길을 따라 중앙광장을 지나서 오른쪽 동그라미로 보이는 이벤트 광장을 지나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라고 적혀 있는 순교자 기념관을 돌아 보고 삼부자 묘지를 돌아 보고 성산교회로 되돌아 왔다. 새롭게 단장하고 개관한 역사관에서 애양원에 대한 역사기록들을 보면서 많은 설명을 들었다. 오른쪽 위쪽에 보이는 마을은 도성마을이고 하센인들의 집단 거주지였던 곳이다. 소록도와 애양원이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소록도는 일제시대에 한센인을 격리하기 위해서 강제로 이주시켜 한이 서린 곳이지만 애양원은 같은 한센인이어도 사랑과 희생과 헌신으로 돌보던 민간 의료 시설이였다. 초기 한국을 사랑했던 선교사님들의 사랑이 지금도 많은 영혼의 치유와 회복의 공간이 되고 있다.

손양원 목사의 순교로 인한 파급을 기록해 놓았다.

손양원 목사의 순교의 열매는 교육과 복음 전파를 통하여 이어져 가고 있다고 기록해 놓았다.

1. 성산초등학교 2. 성산중학교 3. 한성대학교 4. 여수 미평교회, 순천 산돌교회, 미얀마 양곤 산돌교회 캄보디아 새생명 교회가 열매들이라고 기록해 놓았다.

산돌의 잠든자리 / 그의 생일은 중생한 그날이였고/  주소는 주님의 따뜻한 품속이였다./

그는 기도로 호흡을 하시고/  성경으로 양식을 삼으시며/ 전도로 일을 삼으셨다/

그의 신앙은 십자가와 천국이였고/ 생활은 희생의 재물이였다./ 이렇게 적혀 있다.

두 아들 순교 감사헌금 봉투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

순교의 두 아들이나 주신 감사의 봉헌금 일금일금 일만원 순교 두 아들의 아버지 손양원 이렇게 적혀 있다.

(ChatGPT에게 1948년의 1만원은 2025년의 가치로 얼마이냐?고 물어 보니 2,620,908원 정도라고 대답해 준다. 

연평균 약 7.5%의 물가 상승률을 기준으로 추정한 값이라고 한다. 이것보다 훨씬 큰 금액일거라고 생각했는데.....)

돈으로 환산 할 것이 아니라 그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데 참 염치없다. ㅠㅠ

穿雪野中去 不須胡亂行 (천설야중거 불수호란행)

今朝我行跡 遂作後人程 (금조아행적 수위후인정)

눈을 덮어쓴 들판속으로 가니, 어지럽게 가서는 안될 것이다.

오늘 아침 나의 행적은 좇아오는 뒷 사람을 위한 행로가 될 것이다.

 

雪朝野中行 눈온 아침에 들길을 갈니 開路自我始 길을 여는 것은 나 부터라

不敢少逶迤 감히 삐둘거리며 걷지 못함은 恐誤後來子 뒤에 올 사람을 무서워이다.

정말 감동적이고 복음적인 시가 있다. 누군가 해석해 주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신앙적인 시라고 한들 이해 할 수 있을까?

人間原罪淃天時 (인간원죄권천시) 인간의 원죄가 하늘에 미칠 때

律法先知難救之 (율법선지난구지) 율법과 선자가는 구원하지 못하네

上帝愛民降人子 (상제애민강인자) 하나님께서 백성을 사랑하사 인자를 보내시고

信彼直到永生期 (신피직도영생기) 그를 믿으면 영생에 이른다 약속하셨네

 

人子自卑賤中役 (인자자비천중역) 인자는 스스로 낮아져 천한 가운데 역사하시고

愚冥衆生却不知 (우명중생각부지) 우매한 중생은 깨닫지를 못하네

人子決然赴難行 (인자결연부난행) 인자께서 경연히 험한 길을 걸으셨고

最後晩餐堪難情 (최후만찬감난정) 최후만찬에서 안쓰러운 정을 감내하셨네.

 

臨別慇懃洗足敎 (임별은근세족교) 작별에 임해 제자들의 발을 씻겨 가르쳤고

欲高當卑肺肝銘 (욕고당비폐간명) 높고자 하면 낮아져야 함을 폐와 간에 세겨라.

十二使道多英俊 (십이사도다영준) 열두 사도 모두가 다 훌륭하지만

中有賣節死猶經 (중유매절사유경) 그 중에 절개를 판자는 죽어도 싸다.

 

餠卽聖軆酒卽血 (병즉성체주즉혈) 떡은 예수님의 몸이요 포도주는 주님의 피라

食之飮之永警醒 (식지음지영경성) 그것을 먹고 마셔 영생을 누려라.

十字架上甘犧牲 (십자가상감희생) 십자가의 희생을 달게 받으셨으니

至純代贖天亦鳴 (지순대속천역명) 지순한 대속으로 하늘 또한 울었네

 

權能復活能勝也 (권능부활능승야) 권능으로 부활하사 능히 이기셨도다.

敬天愛人信道明 (경천애인신도명)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면 믿음의 길이 밝아지나

自是神人更和睦 (자시신인갱화목) 이로써 하나님과 인간이 다시 화목하게 되어

感受聖靈得永生 (감수성령득영생) 감사히 성령을 받고 영생을 얻으라.

손양원 목사님의 일제 강점기 신사 참배 거부로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수감 되셨는데 가족과 성도들에게 보낸 옥중 서신이 총 73통이라고 한다. (손양원의 옥중서신이라는 책도 발간이 된 모양이다) 옥중 서신이 여럿 전시되어 있었다.

옥중에 계신 손 목사님께 박춘갑 장로님이 보내신 편지이다.

장로님 편지 내용도 가관이다. 옥 중에 계신 목사님께 주님과 함께 계시니 행복자 이십니다. 진주 보물을 찾는자보다 더 행복자가 아닐까요? 목사님은 참 행복자가 되사 참 평안의 소유자가 되십니다. 주님 날 사랑하심은 말 할 수도 없다 ....뭐 이런 내용으로 적혀 있다. 그 목사에 그 장로였던 것 같다. 

1918년 일본은 신사를 설치하기 시작했고, 1925년 서울 남산에 조선 신궁을 세웠다.

당시에는 신사참배는 자유의지였으나 1930년에 들어오면서 점차 강제적으로 바뀌었다.

일제 말기의 신사 참배 강요는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신앙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다.

신앙인 개인뿐 아니라 교회 전체와 기독계열 학교 모두가 당하는 수난의 시기였다.

신사참배 반대는 교회와 학교의 폐쇄로 이어져 신앙과 교육의 기회마저도 앗아갔다.

1938년 제27차 장로회 총회에서 신사참배가 가결된 후 여전히 거부하는 신앙인들은 더욱 심한 핍박을 받았다. 손양원 목사가 애양원교회에 부임한지 1년이 조금지난 1940년 9월 25일 박용희 목사등 신사참배를 반대하던 인근 지역 목사들이 일제히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다. 감옥에서도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일본을 피판했던 손양원 목사는 해방이되어서야 비로소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가족 수난사가 기록되어 있다.

신사참배를 거부함으로 말로 형언 할 수 없는 고초를 격으셨는 것 같다. 

두 아들에게 큰 인물이 되려면 절대로 죄를 짓지 말라고 옥중편지로 격려 했다는 내용도 있다. 

손양원 목사 순교 기념탑이다.

손 목사님의 순교정신을 널리 알리고 복음의 세계화를 위해 사랑의 열매탑을 만들어 놓았고 손 목사와 두 아들의 순교정신을 나타내기 위해 사랑의 씨앗과 줄기, 열매를 형상화 했다고 한다.

죽도록 충성하시고 계신 1530 장로님들이 참 자랑스럽습니다.

장로 장립 10주년 아주 뜻 깊은 행사였습니다. 존경하는 임원진 장로님들께 경의를 표하며 박수를 보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