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너희에게 행한대로” (요13:15) 2023.12.28

다이나마이트2 2023. 12. 28. 08:29

“너희에게 행한대로” (요13:15) 이기복 목사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대로 너희도 행하게 하기 위해 내가 본을 보여 주었다.
(요한복음  13:15, 우리말 성경)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죄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제자를 삼기 위해 온 힘을 다 하셨습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성품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제자의 발을 씻기시며 제자의 본, 섬김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 곳곳을 다니시며 말씀을 선포하시다가 유월절 만찬을 위해 모이셨습니다.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됐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1, 우리말 성경)

아버지께로 가실 때를 아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보여준 삶의 모습은 모순뿐이었습니다.

 3년간이란 시간을 주님과 보냈으나 여전히 이기적이고 답답한 삶을 보여준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려 주었지만 여전히 제자들은 누가 높은 것이가를 논쟁합니다. 

베드로도 주님을 부인할 것입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 넘길 것입니다. 

그것을 준미은 모두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십니다. 

그 발을 붙잡고 씻어 주십니다.  제자들의 더러움, 부족함, 배신의 상처까지 덮어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무조건적인 사랑이고 은혜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을 하십니다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대로 너희도 행하게 하기 위해 내가 본을 보여 주었다.
(요한복음  13:15, 우리말 성경)

제자들은 여전히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은 쉬운 삶이 아니었습니다. 힘들로 어려운 삶이었습니다. 

주님은 스스로의 권위를 버리고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가 죄인들과 친구가 되어 사셨습니다.

삶의 안정감을 포기하신 삶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주님 스스로가 선택하신 길이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길은 복되고 기뿐일이지만 예수님처럼 스스로 거절하여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배신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아는 지식을 가장 고상하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세상 삶을 얼마든지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포기하고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난과 핍박은 스스로 선택하고 받은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동원목사의 팔복의 말씀에 따르면 그분의 가치를 붙잡고 살기 때문에 고통을 필연적으로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가치와 세상의 가치가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가치를 우리가 거절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고난과 핍박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쉬운 방법을 택하여서는 안됩니다. 

한 반에 하나님을 믿는 아이들이 5명 미만입니다, 
3% 만이 주님을 믿는 아이들입니다. 
이혼전문 변호사의 간판이 한국에 많습니다. 
남자도 화장을 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문화라는 이름으로 세속화되는 것을 봅니다. 

이러한 세속적인 가치관과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부딪히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 어려운 사회가 되었습니다. 
학생들이 찬양을 부른 것을 보았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나의 삶의 이유… 
변함 없으신 예수님… 
주님만 나의 삶의 이유라는 찬양이었습니다.  
그 찬양을 랩으로 부르면서 아이들이 주장합니다. 
이것이 내 정체성이라고 고백하는 찬양이었습니다. 

세상이 손가락질 해도 자신들의 문화로 세상을 향해 외칩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아이들이 이렇게 살고 싶다고 외치는 모습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어떻게 하여야 그들을 도울 수 있습니까?  

22 인자 때문에 너희를 미워하고 배척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고 밀쳐 내도 너희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23 그날에는 너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크기 때문이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에게 이렇게 대했다.
(누가복음  6:22~23, 우리말 성경)

주님 때문에 욕을 먹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숨어서 살고 있습니까? 
적당히 거리를 두며 자신을 위해 교회을 이용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삶은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선택할 것인지는 우리의 몫입니다. 

주님은 행할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렇게 살아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이들을 위해 본을 보이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고 이어령 선생의 강연중에 예수님이 구원자이신 것을 믿으며 종교를 선택한다면 

기독교를 선택할 것이라고 간증하며 그런 가운데에서도 기독교를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는 

교회가 진리 때문에 고난당하는 것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의 상처를 보여주는 교회를 소개시켜 준다면… 

교회는 예수의 상처를 보여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17 이제부터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마십시오. 나는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습니다.
(갈라디아서  6:17, 우리말 성경)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그 사랑의 흔적을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24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해 받은 고난을 기뻐하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분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내 육체에 채웁니다.
(골로새서  1:24, 우리말 성경)

바울은 고난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고난을 자신의 육체로 채우겠다고 말합니다. 
세상을 거절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살았습니다. 
자신의 아픈 흔적이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진정한 사랑의 흔적으로 표시하였습니다. 
이어령 선생이 바라는 것이 바로 이 흔적입니다. 

우리는 성도로서 어떤 저항의 흔적을 남겨야 할까요? 
오늘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받는 고난은 누군가를 돕기 위한 고난이며 내가 받는 슬픔을 누군가를 돕기 위한 슬픔입니다. 
내가 받은 고난은 남을 위한 고난이라는 하나님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오늘 자녀의 발, 아내의 발을 씻어 주면서 이 고난의 뜻을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