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어떻게 절대선이 존재하는가? (요1:45-51) 2022.12.12

다이나마이트2 2022. 12. 17. 23:10

40일 새벽기도[1일차] 어떻게 절대선이 존재하는가? (요1:45-51)  말씀: 이재훈목사님
 
금년도 새벽기도 시간에는 [요한복음]의 말씀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다.”(요 14:06)
 
이 말씀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이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무신론]의 물결을 우리가 이길 수 없습니다.
 
이 말씀에는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를 묻는 [도마]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원문에 있는 [정관사, The]”라는 단어입니다.
 
영어에서, [The Way]라고 [The]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 밖에 없는 “유일한 길”을 말하고, “유일한 진리, 유일한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는 것은 “나는 너희가 반드시 따라가야 할 [길]이며, 너희가 반드시 믿어야 할 [진리]이고, 너희가 반드시 소망해야 할 [생명]이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길이며, 전혀 흠이 없는 진리이며, 영원한 생명이니,
나를 따르라.”는 선언입니다. 다시 말해서 “너희가 만일 나의 길에 거하고, 나의 진리를 안다면, 너희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특징은 무엇입니까?
그 당시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외면하고 있지만, “예수님은 당신 [자신]에 대하여 확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의 핵심은 “①예수님께서 자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②우리의 [사랑의 대상]으로, ③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분]으로 소개하셨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어느 종교의 창시자 중에 “자신을 [절대적인 존재]로 내세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말씀을 하신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고, 유일합니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과 그의 생활이 ”그가 한 말과 일치하는가?“를 살펴보면, 알게 됩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예수님의 삶과 영향력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절대적인 분으로, 유일하신 분으로, 하나님과 동등한 분“으로 소개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40일 새벽기도를 시작하는 주제의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나는 유일한 길이요, 유일한 진리요, 유일한 생명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성경을 더 깊이 살펴보면, “예수님은 구약의 모든 예언을 다 성취하신 분”으로 말씀하셨고,
그리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그분과 유일무이한 친밀한 관계로 말씀하셨고,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고, 또한 심판하실 분으로 소개하셨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절대적인 [신성]을 말씀하고 계시다.”는 겁니다.
우리는 40일 기간 동안에, “예수님의 삶이 유일한 [길]인지, 유일한 [진리]인지, 유일한 [생명]인지?”를 알게 되고,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①금주는 예수님을 만난 여러 사람들의 만남 속에서, “예수님이 어떻게 유일한 길인지?”를 살펴보고, ②다음 주에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진리가 되시는지?”를 살펴보고, ③또 마지막 주에는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영원한 생명이심“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시대에 교회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조소]와 [공격]이 있습니다.
그런 질문에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다니엘]이 [빌립]에게 한 말과 비슷합니다.
 
성경을 보면, [빌립]이 [나다니엘]에게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들이 기록한 바로 그 메시아를 만났다.”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바로 “나사렛 예수”라고 소개합니다.
 
그때 [나다니일]은 [빌립]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사렛에 있어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는가?”
 
[나다니엘]의 이 말은 그냥 내뱉어진 말이 아니고, 세 가지 사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첫째는, 이것은 [나다니엘]의 편견이고, 당시의 사람들이 가진 편견과 같습니다.
 
그것은 “나사렛이라”는 장소에서 사람들의 멸시와 편견이 포함이 돼 있어, “하찬한 지역에서 메시아가 나온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는 폄하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나다니엘]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당시의 사람들이 나사렛이란 동네를 경멸했기 때문입니다.
 
(2) 둘째로, 이 말 속에는 [나다니엘]이 다른 사람에 비해, ”성경 지식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는가?”라고 할 때, “그는 메시아가 나온다면, 그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는 성경의 예언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3) 셋째로, 나타나는 것이 [나다니엘]에게 나타나는 [회의감]입니다.
사람들이 지식을 추구하다 보면, 언젠가 부딪히게 되는 것이 [회의감]입니다.
 
그 당시에 [메시아]를 기대하면서도 “과연 메시아가 오겠는가?”라는 [회의감]은 여전했습니다. 이렇게 로마의 압제 속에서, 가난과 기근 속에서도 “메시아가 과연 올 수 있겠는가?”라고 걱정하고 있을 때, [빌립]은 “메시아를 만났다.”고 하니, “나사렛에서 무슨 메시아가 나겠는가?”라고 반문한 내용입니다.
 
이런 [회의론]이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결국 확실한 믿음에 이르게 되는 많은 사람들이 이 [회의론]을 통해, 더 깊은 확신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나다니엘]의 질문은 세상 사람들이 가지는 [회의론]을 대표한 것입니다.
또 요즘에 교회에 대하여 던지는 [냉소적인 질문]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1장]은 어떻게 시작합니까?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고 할 때, 원문에는 [로고스]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로고스]는 “만물을 움직이는 절대적인 [질서]”를 의미합니다.
당시 헬라 사람들은 “세상을 움직이는 어떤 절대적 법칙과 질서가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요한]은 바로 “그 [로고스]가 하나님이시다.”라고 담대하게 대입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그분이라.”고 소개하고, “하나님은 선하시며, 절대적 이성을 가지고,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으로 소개해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받은 인간에게는 “그 [절대 선]에 대한 갈망”이 있고,
“과연 그런 분이 존재할 것인가?“ 라는 의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태초에 [로고스]가 있는데, 그 [로고스]는 하나님과 함께 했고, 하나님이 곧 그 [로스다]라고 적용했고, 그것이 엄청난 임팩트가 있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당시 헬라인들이 가졌던 그 믿음과 정반대로,
오늘 이 시대에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무신론]은 “로고스와 같은 존재는 없다.”는 것이고, “우주를 움직이는 절대적이고 합리적인 질서는 결코 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엄청난 문제입니까?
사람들은 ”절대적인 질서가 없다.“고 믿으면, 죄가 없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러니까 회계가 필요 없고, 구원도 필요 없는 것이고, 천국과 지옥도 없다.”고 성경에 나타난 모든 진리를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왜, 이런 [무신론]을 믿고 싶어 할까요?
그것은 “자신 안에 있는 죄책감을 떨쳐버리고 싶은 심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여기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그런 [무신론] 사상에 동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기독교]에 무슨 선한 것이 있겠는가? 세상에 어떻게 절대선이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회의론]에 빠집니다.
 
▶그러나 [복음]의 가장 중요한 기초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절대적으로 선하신 분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선하신 분“이에요.
그 분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고, 절대적으로 선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선]으로 ”[악]을 이기신 분“입니다.
예수님을 상징하는 [십자가]는 [선]이 ”[악]을 이긴 승리“의 표시입니다.
 
[야곱]이 본 환상도 ”하늘이 열리고,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미리 보여준 사건입니다.
 
야곱에게 미리 보여준 그 [환상]은 ”하늘과 땅이 연결되는 길“이 ”예수님이 오신다.“는 징표입니다.
 
하늘에 계신 선하신 하나님이 하늘 위에만 계시지 않고, 이 땅으로 내려오셔서,
그리고 그 분은 죽기까지 낮아지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절대적으로 선하신 분입니다.
 
▶왜, 그 분이 세상에 오셔야만 했습니까?
그분은 선하신 분이기 때문에, 반드시 오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선으로 악을 이기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길]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나다니엘]은 그 자신의 [회의감] 속에서도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여러분들 중에서, ”무엇인가?에 [회의감]에 빠져 있는 영혼“들이 있다면, , [나다니엘]이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예수님을 만나면 [회의감]은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님이 [길]이라는 사실”을 확신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