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죽음에 담긴 풍성한 구원의 열매 (요12:23-33) 말씀: 이재훈 목사님
[고난주간]은 예수님이 [십자가]로 나아가신 “일주일을 묵상하는 주간”입니다.
특별히 [요한복음]에는 이 기간에 예수님의 모든 삶과 사역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삶의 목적]이 바로 십자가였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나아가신 것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이끌려 간 것이 아니고,
그것은 하나님의 완전하신 계획으로, 십자가를 향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요셉과 마리아의 ”육신의 아들“로 태어나신 것도, 나사렛에서 자라나신 것도,
”모두가 이 [십자가]를 향하여 오셨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종려나무 가지를 흔드는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시고,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이후에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 때의 상황은 유월절 명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했고,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십자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1) 십자가의 첫 번째 의미는 “십자가는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인 12장 23절을 보면, “인자가 영광 받아야 할 때가 왔다.”고 하셨고,
28절에 보면,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소서. 바로 그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는데,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했다. 다시 영광스럽게 할 것이다.“(요 12: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대화에서도 이미 “[십자가]가 영광스러운 때”인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7장 1절에도, “아버지여, 때가 됐습니다. 아들이 아버지께 영광 돌릴 수 있도록,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으며,
또 17장 5절에서도,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누렸던 그 영광으로,
이제 아버지 앞에서 영광스럽게 하소서.”라고 예수님께서 반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①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②아들이 영광스럽게 되는 이 순간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영광을 얻는 때”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자신을 통해서, 어떤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고,
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던 때”를 [영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그때를 “영광스럽게 되는 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의 죽음]이 영광을 얻는 때일까요?
오늘의 본문, 24절 이하의 말씀에서 그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하늘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요 12:24)”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죽음]이 “많은 열매를 맺는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그 너머의 결과”를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지도자들은 살아있을 때에, 그 영향력을 미칩니다.
그러나 그 지도자가 죽으면, 아무 영향력도 미치지 못하고, 사라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위대한 지도자를 기억하기 위해서, “[기념일]이라는 것”을 만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은 살아계실 때보다도 “죽음 이후에 그 영향력”이 확대되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신비스러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도 사람들이 모여 들었지만, 예수님이 죽고 난 이후에
더욱 더 크게 확장되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십자가]의 영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통하여 영광을 얻으시고, 더욱더 시간이 갈수록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는 ”역사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십자가는 그 십자가 앞에 나오는 모든 이들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되고,
영광 받으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영광을 계속해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십자가가 되고 있습니다.
(2)둘째로, [십자가의 의미]를 ”십자가는 세상을 심판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이 세상에 대한 심판”입니다.
요한복음 12장 31절의 말씀에, “이제 세상을 심판할 때니, 이 세상의 통치자가 쫓겨날 것이다.”(요 12:31)
[십자가]는 이 세상이 심판받는 자리로, [세상의 통치자], 곧 사단이 쫓겨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그 사단과 하나 된 모든 이들이 쫓겨나는 자리입니다.
[불의한 세상]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로마 제국의 빌라도 총독과 유대 지도자들이 음모하여, 불법 재판으로 죽였습니다.
거기에 [거짓 증언]이 동원되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심판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우리의 [옛 사람]도 함께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6장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분만의 십자가가 아니다. 우리도 그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라.
그렇게 그분과의 연합이 이루어진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심판하신 것이기 때문이라”고
기록된 것입니다.
(3)세 번째로, [십자가의 의미]는 [십자가]는 “승리의 표시”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인 것입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에게 이끌어, “그분과 연합시키게 하시는 승리”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32절의 말씀에, “그러나 내가 이 땅에 들려 올라갈 때, 나는 모든 사람들을 내게로 이끌 것이다.”(요 12:32)
여기서 “이 땅에서 들려 올라간다.”는 것은 [십자가의 사건]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끔찍하고 잔혹한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등을 돌렸지만,
그러나 그것은 마땅히 죽어야 하는 [죄인들의 십자가]였을 뿐이고,
[예수님의 십자가]는 ”모든 사람을 이끄는 십자가가 되었다.“는 말이니까, ”승리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벨라드]라는 신학자는 이 [십자가]를 “거대한 자석”으로 비유했습니다.
큰 [자석]에 어떤 철 조각에 붙게 되면, 그 철 조각도 전도가 되어서, [자석의 효과]를 그대로 가져와서, “철을 붙일 수 있는 자석처럼 변화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께서 우리를 이끄셨듯이, 또 다른 영혼들을 주께로 인도하는 “자석과 같은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서,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사람들을 이끄셨고, 하나님께로 인도하셨습니다.
이 [십자가]의 끌어당기는 힘은 “부활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영원한 생명]을 모든 사람들이 받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 생명]을 우리가 이어 받아,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 받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4절 25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히 그 생명을 보존할 것이다.”(요12:24-25)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길]은 무엇입니까?
그 [길]은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자학하고, ”자기의 생명을 소홀히 여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자기 생명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십자가에서 마땅히 죽어야 되는 [옛 사람]”을 의미하는 거예요.
[예수님의 십자가]에 “자신의 옛 사람을 넘겨주는 것”을 여기서 “미워한다.”고 말해요.
그러니까 넘겨줄 때 “아쉬워하지 말고, 미워하는 마음으로, 버리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목적]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는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승리의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한 주간 묵상하면서, 영원한 새 생명을 받아드리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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