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주 안에서 자랑하십시오 (고후10:12~18) 20121.03.21

다이나마이트2 2021. 3. 21. 18:53

주 안에서 자랑하십시오 (고후10:12~18)    말씀: 이재훈 목사님

 

그레샴의 법칙이 있습니다.

이것은 “악화가 양화를 물리친다.”는 법칙입니다.

 

더 쉽게 설명하면, “나쁜 돈이 좋은 돈을 쫒아 낸다.“는 말입니다.

영국의 토마스 그레샴이라는 관리가 한 말인데, 당시 영국에는 지폐가 없었고,

은화를 사용했으나, 병행하여 동화를 사용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실질 가치가 있는 은화는 장롱 속에 감추어 두고, 그 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동화만 사용하고 있어서, ”가치의 차이를 인정하라.”는 의미에서, 그 때에 나온 말입니다.

 

이것은 경제의 원리이지만, 이제는 일반적인 원리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능력은 없지만, 부정적이고 교활한 사회를 비유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성실한 사람이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자신을 포장하는 사람들이 더 인정을 받기 때문에,

그것을 비꼬기 위해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 그레샴의 법칙은 교회에서도 나타납니다.

교회는 겸손과 은혜로운 복음이 나타나야 하는데, 그

당시에 고린도교회에는 바울의 영향력이 무시되는 경우가 나타났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허용할 수 없어서 투쟁했습니다.

바울은 그런 거짓과 싸우고,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바울은 자기를 자랑하려고 하지 않았으나, 부득이 자랑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의 문화는 ”그렇게 자기를 자랑해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 1절 말씀에는

”여러분은 내가 좀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용납해 주시기 바랍니다. 꼭 나를 용납해 주십시오.“라고 말하고,

 

16절 말씀에서 ”내가 다시 말을 합니다. 아무도 나를 어리석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그렇게 못하겠다면, 나를 어리석은 사람으로 받아들여 나로 조금 자랑하게 하십시오.“라고 자기를 변명합니다.

 

그러다가, 21절 말씀에는 ”우리의 약한 모습 그대로 내가 욕을 하듯이 말합니다. 그러나 누가 감히 무엇을 자랑한다면, 나도 감히 어리섯음을 무릅쓰고 자랑 좀 하겠습니다.“라고 대 놓고, 자랑을 합니다.

 

바울은 어리석어 보이지만, 그가 원하던 일은 아니지만, 자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까지 말하는 것은 내가 좀 어리석어 보이지만,

”나는 부득이 자랑할 수밖에 없다.“고 공개적으로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울이 ”말을 하지 않는다.”면, 진짜로 어리석음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자랑하는 일이 지혜롭지는 않지만, 고린도교회를 깨닫게 하기 위해, 바울은 스스로를 자랑했던 것입니다.

 

잠언 26장 4-5절 말씀을 읽어보면, “어리석은 사람에게 그 어리석은 질문에 대답해 주지 말아라.

그렇지 않으면, 너 자신도 그것을 묻는 사람과 같이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말 것이다.

어리석은 질문에는 어리석은 대답을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자기를 지혜롭게 여길 것이다.”(잠26:4~5)

 

바울도 이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에게 대답하면, 스스로 지혜로운 줄 알 것입니다.

 

바울의 대적 자들은 반드시 유대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포장하여 자랑을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지식은 완벽한데도,

혹시나 복음을 훼손 할까봐, 자기 자랑을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이미 삼층천을 본 사람입니다.

여기서 삼층천이란,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바울이 14년 동안을 침묵하고, 말없이 지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런 영적인 체험을 했다.“고 한다면, 즉시 광고를 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14년 전에 체험을 하고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를 무너뜨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할 수 없이 자기 자랑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예레미야 9장 23-24절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지혜를 자랑하지 못하게 게 하며,

부자는 부를 자랑하지 못하게 하라. 자랑하는 사람은 이것을 자랑하게 하라.

곧 그가 나를 깨달아 내가 이 땅에 인애와 정의와 의로움을 행하는 여호와인 것을 아는 것을 자랑하게 하라.

이것들을 내가 기뻐한다. 여호와의 말이다.“(렘9:23~24)

 

자기 지혜나 자기의 힘을 자랑하지 말라. 오직 자랑을 하려면, ”하나님을 자랑하라.”고 권면합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0장 17절에서, “자랑하는 사람은 주 안에서 자랑하도록 하십시오.”(고후10:17) [렘9:29]

 

성경에는 이 말씀의 뒤에, “[렘9:24]”라고 주석이 달려 있을 것입니다.

그 뜻은 “예레미야9:24을 인용한 것이니, ”참조하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지키고, 교회를 세우기 위해, 자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랑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자랑은 10-11장에 걸쳐서 3가지를 자랑합니다.

(1) 첫째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전해주는 분량 안에서만 자랑을 합니다.

 

고린도후서 10장 13-16절 말씀에는

“그러나 우리는 정도에 지나친 자랑을 하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해 주신 분량의 범위 안에서 자랑합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여러분 가운데서 일한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여러분들에게 제일 처음 그리스도에 대한 기쁜 소식을 전했으므로 우리가 그 곳에 갔다고 해서

한계를 벗어나 지나치게 손을 뻗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남이 수고한 것을 내 것인 양 자랑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러분의 믿음이 자라고, 우리의 일도 주어진 한계 안에서 여러분을 통해 더욱 확장되기를 바라는 것뿐입니다.

그것은 남이 이루어 놓은 것을 가지고 자랑하지 않고, 여러분의 지역을 넘어서 더 멀리까지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고후10:13~16)

 

여기를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해 준 분량의 범위 안에서”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바울을 훼방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인데, “이방인 중심으로 사역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지역은 하나님이 바울에게 맡겨주신 지역이니까,

바울이 받은 소명을 함께 나누는 것을 무시하고, 공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에 감리교 선교사는 어디 지역을 맡고, 장로교 선교사는 또 어디 지역을 맡는다.“고

지역을 할당했기 때문에, 아주 지혜롭게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 지역에는 서로가 서로를 공격했기 때문에, 바울은 그것을 지적했던 것입니다.

어느 사회이건 마찬가지 이지만, [내 것]을 만들면 안 됩니다.

 

그렇게 사유화를 만드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바울에게는 그런 의심이 있었기에, 나에게 맡겨주신 분량만큼 만, 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기준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2) 바울이 자랑했던 것은 ”거짓된 일꾼들의 기회를 끊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 4~5절 말씀에는 ”누가 여러분에게 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않은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여러분이 우리의 복음 전파를 통해 받지 않은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여러분이 받지 않은 다른 복음을 받게 해도 여러분은 잘도 용납하고 있습니다.

나는 저 위대한 사도들보다도 조금은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고후11:4~5)

 

이 말씀은 ”다른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용납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저 위대한 사도들은 지금 “스스로 위대하다.”고 자랑하는 거짓 사도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스스로 위대하다.”는 사람들을 냉소적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2-3절 말씀에서,

“왜냐하면, 나는 하나님의 열심히 여러분을 위해 열심을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순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약혼 시켰습니다.

그러나 나는 뱀이 그의 간교한 꾀로 하와를 속인 것처럼,

여러분의 마음이 그리스도께 대한 순전함과 정결함을 버리고, 부패하게 될까 두렵습니다.”(고후11:2~3)

 

바울에게는 하나님의 열심이 있었습니다.

마침 뱀에 의해, 하와에게 넘어진 것 같이, 안타까와 하고 있습니다.

이 거룩한 하나님의 열심으로 인하여, 나는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11장 10-12절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안에 있는 한, 내 이 자랑은 아가야 지방에서는 아무도 막지 못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도 알고, 계십니다.”(고후11:10~12)

 

교회가 거룩해 지려면, “순결에 대한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짓에 대한 영향력“을 끊어 버려야 합니다.

 

바울은 언변이 좀 어눌하여 말을 잘하지 못하지만, 그로 인해 “말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사도가 될 수 있나?”라는 오해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장막(텐트)을 만들면서 “어떻게 사도가 될 수 있나?”를 의심 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거짓 일꾼의 기회를 끊어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교회에도 선한 일꾼에게도 일을 못하도록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서로를 흠집을 내고, 서로를 공격하니까, 문제가 됩니다.

 

교회가 정치적인 집단이 되면, 안 됩니다.

바로 고린도교회에 나타난 현상이므로, 거짓된 일꾼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3)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을 자랑하므로, “주 안에서 자랑한다.“고 말을 했습니다.

바울은 고난 속에서도 11장 30절 말씀과 같이,

”내가 자랑해야 한다면, 나는 내 약한 것들을 자랑하겠습니다.“(고후11:30)

 

바울은 하나님과 함께하면, ”자신의 연약함도 이길 수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사역을 높이려는 것이 아니고, 내 적인 연약함을 자랑한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위하여 ”늘 염려하며, 눌려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은 왜, 염려가 끊이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진짜 자랑하고 싶은 것이 십자가 이외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 말씀을 보면,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인해, 세상이 나에 대해서 죽었고, 나도 세상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이 십자가에 나도 못 박혔고, 나 또한 세상에 대해 그러합니다.”(갈6:14)

 

바울은 거짓된 사람들을 끊기 위해, 자랑했던 것입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자랑하는가?“는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자신이 약한 줄을 알아야, 우리는 하나님을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 자신을 사랑했고, 주 안에서 자신의 위대함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바울과 같이, 이런 건강한 열심을 나타내기 위해, 하나님의 열심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지 못하도록, 우리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열심을 바라보고,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그런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