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7월 6일(토) 제5차 선교역사여행 (대구편)을 진행하였다.
2015년 1차로 호남선교역사 여행(광주, 순천, 여수)를 시작으로,
2016년 제2차 전주, 김제, 군산으로,
2017년 제3차 강화도 선교역사여행,
2018년 제4차 "끝나지 않은 소풍" 부산, 창원편에 이어
2019년 제5차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위에 백합 필 적에" 대구 선교여행 이였다.

5차 선교 역사 여행은 양재 2천선교 사역팀뿐만이 아니라 서빙고 선교사역자들과 함께한다.
서빙고에서 5시 40분 버스가 출발하여 양재에서는 6시에 출발이 예정 되어 있었다.
양재에서는 늘 모이는 장소인 (구)세븐 일레븐 앞에 출발 5분 전에 모두가 모여 계신다.
앞으로는 스마트 스크린 앞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드디어 6시 정확한 시간에 서빙고에서 출발한 버스가 양재에 도착했다.
보통 20~30분 정도는 늦을 줄 알았는데 아무도 지각하신분이 없으신것 같다. 출발부터 산듯하다.
서로가 잘 배려하시는 모습 이천선교의 참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이 된다.

출발 기도 : 이경희 목사님
하나님 아버지, 5번째 선교 역사여행을 출발합니다.
대구 선교역사 여행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들을 보게 하시고 들어야 할 것들을 듣게 하시고
배워야 할 것들을 잘 배울 수 있는 복된 시간들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먼길 오고 가는 동안에 안전을 지켜 주시길 바라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대구선교 역사 공부 : 강승구 집사님
제1회 때부터 선교 역사 여행에 많은 공부도 하시고 자료 조사도 하시고 유인물도 만들어 주시고
선교 역사 공부를 많이 하도록 인도해 주시는 강승구 홍보팀장님
이번에도 변함없이 이동하는 차량에서 대구 선교 역사 여행의 의미와 130여년 전 이 땅에 오신
선교사님들의 발자취를 되돌아 봄으로 선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선교사적 삶에 대하여
함께 묵상하고 결단하는 귀한 시간을 마련해 주셔서 감사하다.
이번에도 베어드(배위량) 선교사, 아담스(안의와) 선교사, 존슨(장인차)선교사, 부루언(부해리)선교사,
대구 근대문화 골목길, 3.1 만세 운동길, 은혜 정원, 선교사 주택, 신명여고 역사박물관, 계성고 역사관,
대구동산병원등에 대해서 버스에서 자세히 강의해 주셨다. 참 감사하다.

대구에 맨 처음 도착한 곳이 대구 제일교회 100주년 기념관 앞에 주차를 했다.
나도 고교3년 대학4년 전체 7년이나 대구에 살았었지만 처음으로 방문해 보는 교회이다.

1893년부터 대구 제일교회의 표지석이 있었다.

현재 대구기독교역사관은 대구제일교회의 3번째 예배당 건물이라고 한다.
퀴즈? 13~15세기 유럽에서 널리 유행했으며 대구, 경북 최초의 기독교회인 대구 제일교회의
건축 양식은? (정답 :고딕양식) 근대 건축사에도 귀중한 자료로 사용되고 있나보다.
경북지방 최초의 기독교회, 대구 제일교회 * 고종 32년(1895) 부산에 있었던 북장로교 선교본부가
대구로 옮겨지고, 광무 2년(1898)에 기와집 4동을 교회당으로 사용하였다.
계속해서 신도가 늘어 1908년에 재래 양식과 서구 건축 양식을 합작시킨 새로운 교회당을 지었다.
1933년 신도들의 헌금과 중앙교회의 성금으로 교회당을 새로 짓고 제일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 1937년에 이주열 권사가 높이 33m의 종탑을 세웠고,
1969년에 내부공사를 하고 1981년에 건물 뒤에 515.7m²(156평)의 성전을 늘렸다.
현재 이 건물의 전체적인 양상은 평면이 남북으로 긴 직사각형이고,
앞면 중앙에 현관을 두고 오른쪽에는 종탑을 세운 간결한 고딕 건물이다.

대구제일교회의 3번째 예배당 건물이 대구 기독교 역사관이 되어 있다.
교회와 함께한 역사적 발자취를 돌아 볼 수 있는 귀한 공간으로 변모되어 있어서 너무 좋았다.

1933년 9월에 2층 연건평 448평의 세번째 예배당인 이곳 기독교역사관을 준공했다고 한다.
지금 보아도 참 아름다운 예배당이다.
1893년 대구를 처음 방문한 배위량(윌리엄 배어드 Wikkiam M. Baird) 선교사가 1896년
대구선교기지로 구입한 땅에 세번째 예배당인 현 건물이 1933년에 건축되어 대구제일교회로
1994년까지 사용되다가 현재는 대구기독교역사관으로 개관하여 시민들에게 개방한다고 한다.
대구 기독교 역사관은 대구 경북 지역에 처음으로 세워진 개신교회라는 역사적 의의 뿐만이 아니라
선교사들이 이 지방을 개화 시키기 위하여 근대적 의료 및 교육을 전개했던 곳으로 선교사들이
지역 근대화의 발판을 마련한 거점으로 역사적 의의를 부여하는 곳이다.

1891년 9월 부산선교 기지를 개설하고 영서현교회를 개척한 배위량(베어드)선교사 부부에게
1892년 7월 5일 딸 넨시로즈가 태어았다. 낸시는 다음 해의 여름 Mofft 선교사에 의해 세례를 받았지만
불행하게도 1894년 5월 13일(3살) 뇌수두막염으로 사망하여 부산 복병산 외인 묘지에 안장 되었다.
베어드 선교사 부인은 어린 딸을 잃은 슬픔과 베어드 선교사의 경,남북 선교여행을 떠난 후의
외로움을 달래고 안전한 여행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간구하는 찬양을 지었다.
2년전 부산 초량교회에서 이런 찬송가에 대한 해설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불렀던 찬양
"멀리 멀리 갔더니"를 오늘 대구 제일교회에서 베어드 선교사님을 기억하며 다시 부른다.
1.멀리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며 슬프고 또 외로워 정처 없이 다니니
예수 예수 내주여 지금 내게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2.예수 예수 내주여 섭섭하여 울 때에 눈물 씻어 주시고 나를 위로 하소서
예수 예수 내주여 지금 내게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3.다니다가 쉴 때에 쓸쓸한 곳 만나도 홀로 있게 마시고 주여 보호하소서
예수 예수 내주여 지금 내게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아멘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보혈을 지나 아버지 품으로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한걸음씩 나가네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시네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네

대표기도 : 장광열 대표장로님
하나님 아버지 이른 아침에 출발하여 대구에 잘 도착하게 하시고
대구 경북 지역 최초의 개신교 교회인 대구제일교회에서 예배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5번째 선교 역사 여행으로 인도하심을 감사합니다.
이 땅에 선교사를 보내주시고 생명 전하기 위하여 순교까지도 감당하신 선교사님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도 복음의 빚진자로 살게하여 주옵소서.
대구 선교 역사가 있기까지 인도하신 베어드 선교사, 아담스 선교사, 부해리 선교사등
초기 경북 내륙지방에 하나님이 인도하신 선교의 역사의 현장을 보고 배우는 시간들 되게하옵소서.
우리 온누리 이천선교팀으로 이곳을 방문한 한분 한분의 삶 가운데, 가정 가운데 교회 사역 가운데
성령의 바람 불게 하여 주옵시고 성령의 열매들이 있게 하옵소서.
수고하신 분들의 노고를 주님이 기억하여 주시고 감동이 있는 선교 역사 여행 되게 하옵소서. 아멘.

말씀 : 마태복음 13장 51~52 , "온고지신" 조경근 목사님
오늘 서빙고와 양재 이천선교팀이 연합으로 선교 역사여행에 함께해서 참 의미있는 날입니다.
오늘 마태복음 13장의 본문으로 "온고지신"이라는 제목을 붙여 보았습니다.
溫故知新 : 옛 것을 익히고 새것을 안다라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에는 5가지 설교가 나옵니다.
1. 5장~7장 : 산상 수훈, 2. 10장 : 제자훈련, 3. 13장 : 천국비유, 4. 18장 : 교회설교(제자도)
5. 24~25장 : 종말설교 이렇게 크게 5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오늘 13장 말씀은 천국에 대한 비유의 설교입니다.
7가지 천국에 대한 비유의 말씀이 13장 전체에 나오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 주인과 같으니라"(마13:51-52)
여기에 나오는 새 것과 옛 것, 우리말 성경에는 새 것과 오래된 것이 나옵니다.
신약과 구약이라고도 할 수 있고, 율법과 예수님의 말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과거와 미래의 천국의 비전이라고도 말 할 수 있겠지요.
역사는 반복된다고 합니다. 좋은 역사의 후손들이 새로운 좋은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전 세계적으로 좋은 선교 역사의 모델을 가지고 있습니다.
온누리교회도 34년전에 선교와 함께 교회가 세워졌고 현재도 발전 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선교의 역사를 배워야 합니다.
온누리교회의 선교에 가장 기초라고 할 수 있는 Why Mission?에도 세계선교와 한국 선교의 역사가
커리큐럼 가운데 들어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읽은 감동적인 동화책을 하나 소개 하력고 합니다.
저자: 트리나 폴러스의 "꽃" 들에게 희망을" 이라는 예쁜 동화책입니다.
동화책이라고 해서 꼭 어린이들만 읽는 것이 아니고 성인이 읽어도 참 좋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한 줄무늬 애벌레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옛날에 줄무늬를 한 애벌레 한 마리가 오랫동안 자신의 보금자리였던 알을 깨고 세상에 나왔습니다.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자 애벌레는 곧 바로 나뭇잎을 갉아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또 다른 잎을 먹어 치웠습니다... 그리하여 점점 더 크게...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애벌레는 먹는 것을 중단하고 생각했습니다.
"삶에는 그냥 먹고 자라는 것 외에 그 이상의 것이 틀림없이 있을 거야."
애벌레는 그 이상의 것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그를 만족시켜 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줄무늬 애벌레는 안간힘을 쓰고 기어가는 다른 애벌레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목적지가 대체 어디인지 알아보기 위하여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러자 하늘 높이 치솟아 있는 기둥이 하나 보였습니다.
줄무늬 애벌레는 그들 틈에 끼어 기어 가다가 한 가지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 기둥은 꿈틀거리며, 서로 밀치는 애벌레들의 더미라는 사실을
그것은 애벌레들로 이루어진 기둥이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내가 찾고 있는 것을 찾아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줄무늬 애벌레는 설레는 마음으로 다른 애벌레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저 꼭대기에 무엇이 있을까?"
줄무늬 애벌레는 사방으로부터 밀리고 채이고 밝히고 떨어지면서 마침내 줄무늬 애벌레는 밟고 올라 섰습니다.
그 속에서는 친구란 없었습니다. 다만 위협이고 장애물이었습니다.
꼭대기에 올라가야 한다는 한가지 마음 뿐이엿습니다.
"꼭대기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으며, 도대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저 꼭대기에 무엇이 있길래 - 이렇게까지 하면서 올라 갈 가치가 있는 것일까?"
"내려가자." 하고 노랑 애벌레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더 이상 올라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푸른 풀밭으로 기어가서 풀을 먹고 낮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노랑 애벌레와 줄무늬 애벌래 둘이는 서로 사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늙은 애벌레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놀랐습니다.
"변을 당하신 모양인데, 제가 도와 드릴까요?"
"변을 당한 게 아니란다. 한 마리의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이럴 수밖에 없단다."
"나비가 무엇인지 얘기 좀 해 주시겠어요?"
"그것은 네가 되어야 하는 바로 그것을 뜻하는 거란다. 그것은 아름다운 날개로 하늘을 날며,
하늘과 땅을 이어주기도 하지. 그것은 꽃에서 나오는 달콤한 꿀만을 마시면서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사랑의 씨앗을 운반해 주기도 한단다."
"어떻게 나비가 될 수 있단 말인가요?"
"그러기 위해서는 애벌레의 상태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을 정도로 간절히 날기를 소원해야 한다."
..........번데기 과정을 거쳐서 나비가 되는 과정을 통하여
호랑나비가 되어 행복하게 살았는다는 이야기를 해 주시는데 아무 생각 없이 들었다.
결론은 나비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죽음의 애벌레의 행렬에서 이렇게 끝날 인생이 아니니라고 알리므로
나비는 나비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즉 바로 주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나 자신이 되어
주님이 기뻐하시는 바로 그 사역을 감당하며 행복하게 사는 인생을 살으시길 바랍니다.
온누리교회는 처음부터 선교하는 교회로 열방을 향한 교회로 세워졌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번데기의 삶이 아니라 호랑나비와 같이 나비가 되어 비상하는 온누리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도착 예배 이후에 대구선교역사에 대해서 남영선 해설사님으로부터 선교 역사에 대해서 공부했다.
대구 제일교회 기독교 역사관 1층에 교회 표지석이 전시되어 있다.
1955년에 머릿돌이 전시되어 있다.
1933년에 대구 제일교회의 3번재 건물이 준공되어 60여년동안 사용하셨다고 들었는데
1955년의 머릿돌은 언제것인지 잘 모르겠다.

교회의 종탑에 설치되어 있던 종인 것 같다.
용케도 일본에 빼앗기지 않고 보관이 되어 있어서 다행이다.

남영선 해설사님이 대구 제일교회의 역사와관련하여 참으로 많은 것들을 말씀해 주셨다.

대구제일교회 부설 대구 기독교 역사관 내부의 모습.

남을 알지 못하면 자신도 알지 못한다.또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면 부분을 바로 이해 할 수 없다.
베어드 선교사 : 대구 경북 지역에 복음을 최초로 증거한 선교사이다.
베어드 선교사는 경주와 상주가 경상도 지역의 주요 도시이던 시점에 대구가 중심지 임을 꾀뚫어 보았다.
약령 시장이 열리면 전국의 약재상들이 대구로 몰린다. 행정의 중심이다. 교통의 요충이다.
인구가 많다. 상업의 중심지이다. 부동산 구입에 관청의 반대가 없다등
미국 선교 본부에 대구선교 본부를 요청하신 선교사님이시다. 나는 이런 통찰력이 부럽다.
부산에서 출발하여 대구, 상주, 안동, 포항, 밀양들을 순회하시면서 나의 고향 안동에도 바로 이분이
복음을 최초로 전해 주신 분이시다.
숭실대학교도 바로 이 베어드 선교사님이 만드신 대학이다.

세 번째 예배당 제일교회 자료 사진]
전조선 주일학교 제4회 대회가 1933년 10월 6일 ~ 13일까지 대구 제일교회(제1회 의장)에서 개최되었는데,
최대 규모인 448평의 세 번째 예배당이 준공되어 전국에서 3,600명의 교인이 참석하였다.
이 기간 중 1933년 10월 8일 오전 11시 대구제일교회 세 번째 예배당의 입당 예배를 드렸는데
최재화 목사의 사회로 진행되고 라셀 박사의 예루살렘의 두 번째 성전 건축이란 설교로 참석자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이때부터 대구를 제2 예루살렘으로 불렀다.

대구 제일교회 첫번째 예배당.
1896년 1월에 매입하고 수리만하여 성전으로 사용했다고 하신다.
네번째가 아담스 목사님 6번째가 존슨 의사이다.
불교와 유교를 숭상하시던 양반 어른들이 무엇이 아쉬워서 예수님을 믿게 되셨을까?
성령님의 역사란 이해할 수가 없다.
모시 적삼에 갓을 쓴 어른들이 시골 동네에서 많이 뵈었던 분들인 것 같다.

[1917년 삼륜 오토바이를 타고 대구역 광장에서 아담스 부부]
오른쪽에 신발도 신지 않은 사람들이 서 있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선교사님이 나타났으니
나도 예수님 믿고 오토바이 한 번 타봐야겠다는 소망이 생길 것 같다.
문화 충격이 이루 말 할 수 없었을 것 같다.
일제 강점기를 격으면서도 6.25전쟁을 격으면서도 이 나라 이 민족이 이 만큼 잘 살게 된 것은
바로 이런 선교사님들 덕분이라고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좌측 사진 자료
대구 성가합창단조직기념(1939년 6월18일)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하던 양반 동네에
남자와 여자가 함께 서서 노래를 한다 천지가 개벽할 역사적 사건이였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기독교가 개화에 앞장을 섯기 때문일 것이다.
중간 위 사진 자료
박태준 집사가 조직한 남녀 성가 합창단의
‘제1회 연주회'(1939년 12월 3일 시민회관) 일장기를 달지 않으면 공연 자체를 할 수 없었던 시절이라고 한다.

서리 집사님들도 교회에 이런 승낙서를 제출하신 모양이다.
본인은 대구제일교회 1963년도 서리집사의 직을 수락하오며, 제반 주의 사항을 힘써지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도록 힘쓰겠습니다.
1963년 12월 20일 OOO 성도 대구제일교회 당회장 귀하
교회서 주는 임명장을 받을 것이 아니라 이런 승낙서를 다시 제출하면 어떨까 싶다.

목사님께서 저술하신 요한복음과 로마서등 강해설교 자료인 것 같다.

예수의 재림(1913년) 조선야소교서회 발행 책이다. 오른쪽은 창세기 강해서(상) 1925년 책이다,

1933년 한국에서 생한 경험들 (VIVID EXPERIENCES IN KOREA)
오른쪽은 선교사 맥과 한국에서 온 소식들이 책으로 만들어져 있다.
아마도 선교 보고서 이거나 선교사님들의 간증집 같은 것 인것 같은데 역시 기록을 잘 남기셨나 보다.

대구 제일교사 역사가 10년 단위로 정리되어 있다.80년사, 90년사, 100년사 부럽게 정리되어 있다.

교회의 시련기는 민족의 시련기와도 일치를 한다.3.1운동의 해인 1919년에 시작하여 일본의 동양 제패의 야망이 노골화하여 태평양전쟁 또는 제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1936년)까지를 말한다.이 기간에 교회는 3.1운동과 자치 파동 같은 혹심한 시련을 겪어 교회가 극시 쇠잔 상태에 빠졌다가 그 파동들이 지나간 후 다시 재건하고, 내실하여 갔다.
왼쪽 사진 : 1906년 10월 15일 아담스 목사에 의해 계성중학교가 설립인가되고 1907년 개교하여
첫 입학생을 맞은 사진이다.
가운데 사진은 부마태에 의해 설립된 초창기의 신명여학교 사진이다.
맨 오른쪽 사진은 1921년 대남유치원 사진인데 대구 경북 지역의 최초의 유치원이라고 한다.

대구에 박태준,현재명과 같은 음악의 대가들이 대구에서 배출 될 수 있었던 배경도 바로
이 선교사님들에 의한 근개화 교육에 앞장 섰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피아노를 중학교에 입학을 해서야 음악실에서 보았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풍금(오르간)이 학교에 1대가 있었는데 각 학년으로 이동하면서 사용했다.

당시에 사용해던 것은 아닐 것으로 생각하지만 대구 제일교회에서 사용하던 성찬기와 헌금 바구니
왼쪽에 백자 항아리는 성미를 보관하는 성미 항아리라고 한다.
온누리교회에도 매월 마지막 주일에 구제 봉사주일이라고 성미를 모으고는 있지만
성미 보다는 헌금으로 대신 하기도 하는데 식사 한번 할때에 1숟가락의 성미를 모았던
신앙의 선진들의 그 정신을 되살려야 할 텐데.....

다리미는 나도 기억이 난다. 저기에 숯불을 얻어서 모시 적삼이나 광목이나 무명들을
주름없이 잘 다리던 기억이 있다. 타자기도 참 오랜 된 타자기 같다.
당시에 선풍기가 있었다는 사실도 놀랍니다.

왼쪽은 전화기 오른쪽은 라디오이다.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물건들이다.

대구 제일교회 이상근 목사님이 사용하시던 목사 신분증과 여권과 항공권 보관 케이스 같다.
오른쪽에 한문으로 적혀있는 노트는 목사님의 일기장이라고 한다. 총56권의 일기장 가운데
제1권이 이렇게 전시되고 있다.

이상근 목사님 자료관이 역사관 내에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이상근 담임목사님의 재산 헌납서 이다. 목사님의 전 제산인 것 같은데 모든 재산을 대구제일교회에
헌납을 하신다는 자필 헌납서 이다.
오늘도 어느 대형교회 원로목사는 몇 십억의 교회 헌금을 횡령했다고 뉴스에 나오고 있는데
한 세대전의 우리 목사님들은 이렇게 청렴하시고 사회적으로 존경받아 마땅한 일을 하셨구나.

이상근 목사님의 좌우명
1. 아침에는 사람을 대하기 전에 성경을 읽고 기도하라.
2. 가급적 자기 변명을 하지말고 종종 근본적 자기 반성을 하라.
3. 자주 근본적 철저한 반성을 하라.
4. 명예직은 택함을 받을 것이지 스스로 택하지는 말라.
5. 물질관리에에 결백하라.
6. 촌음을 아껴 공부하라.
7. 남에 대하여는 긍정적이며 건설적인 사람이 되라.
8. 어려운 일을 당한 때 일수록 더욱 전진하라.
9. 환영과 배척을 동일시 하라.
10. 교회 문제는 스스로 책임을 지라.
11. 중요한 문제는 해결자가 아니라 해결받는 자가 되라.
12. 오는 교인은 환영하되 남의 교인을 빼앗지는 말라.
13. 심방은 하되, 이웃 놀이는 하지말라.
14. 설교는 언제나 마지막이라는 종말적 자세로 하라.
15. 모든 예배와 모임등 시간을 엄수하라.
16.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의롭게 사는 목표를 늘 묵상하라.

엣날 구멍가게에서 보던 금전출납부이다. 전산화가 되기 이전이라 이렇게 투명하게
교회 재정을 관리해 오신 모양이다.

참 아름다운 모습니다. 초 대형교회를 만들어서 왕국을 만들것이 아니라
교회가 교회를 개척하고 파송하여 재정과 인사에 독립을 갖게하는 개척의 모습들이다.
참 자랑스러운 교회라는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교회들이 모교회인 대구 제일교회보다 7배의 더 큰 축복을 받고 또 다른 교회들을 개척하는
아버지 교회 손자교회들이 많이 생겨 나길 기도한다.

대구제일교회 역사관에 대해서 남영선 해설사님이 너무나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셨는데
이해의 폭이 부족해서 다 기억하지는 못하겠다.

대구제일교회 선교관이 한국기독교사적 13호로 선정이 되었는가 보다.

대구 제일교회 앞에서 단체 사진을 한장 남겼다. 사진 찍어 주신분께 감사하다.

왼쪽부터 존칭생략하고 성함만 적어 봅니다.
장광열, 강승구, 김장열, 이생명, 조경근, 이은혜, 김병순, 이은지, 한라, 이경희, 류영민, 김종호
함께 할수 있어서 감사하고 함께라서 자랑스럽습니다.

오전에 대구에 첫번째 교회인 대구 제일교회에 대한 역사 공부를 마치고 바로 옆의 약전 골목에
있는 약전 삼계탕 집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약전 골목에서 먹는 한방 삼계탕이어서 그런지 참 맛있게 잘 먹었다.
대구의 맛집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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