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QT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9행11:19~30)

다이나마이트2 2009. 7. 2. 23:56

2009년 7월 2일 목요일

사도행전 11:19~30 바울을 양육한 바나바

 

베드로가 가이사랴에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준 일로 인해서

예루살렘의 할례자들이 이방인과 함께 식사했다는 이유로 베드로를 비난했다.

이에 베드로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과 성령님이 고넬료의 집에 임한

사건들의 이야기를 차례되로 상세하게 설명을 했었다.

모두가 듣고 비난하던 자들이 잠잠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얻는 기회를 주셨기 때문이다. 아멘.

 

오늘 본문은 안디옥교회의 탄생에 대한 말씀이 있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나서

사도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다.(행8:1)

이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도를 전했다.(19)

 

오늘날로 말하면 레바논에 해당하는 베니게와 구브로 섬과

그리고 수리아 안디옥까지 북쪽으로 복음이 전파되었다.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주 예수를 전한다.(20)

주의 손이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왔다.(21) 할렐루야.

 

박해와 핍박이 나쁜것 만은 아니다.

고난이 없었다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을 터이고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지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

고난이 축복이란 말씀이 이런 경우에 합당한 말씀인가 보다.

 

고난과 핍박이 심한 사람은 배짱도 그만큼 늘어나나 보다.

지금까지는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했는데 헬라인에게도 주 예수를 전한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복음이란것이 문을 열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열려지면 홍수처럼 밀려가는 특성있나 보다.

빌립이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고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는 것이 어려웠지

유대인에게만 전하던(19) 복음이 헬라인 에게도(20)

베니게 구브로 안디옥으로 물밑듯이 복음이 북진을 하고 있구나.  

 

예루살렘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에 보낸다.(21)

내가 좋아하는 바나바가 또 등장한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24)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24) 아멘.

나도 바나바와 같은 사람 되길 소망한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간다.(25)

다소는 지금의 터키지방이다.

소아시아 남동쪽 지중해 해안에 있던 길리기아의 수도이다.

바울의 고향이기도 하다.

비행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예루살렘에서 부터 족히 몇백 km는 간것 같다.

 

사울을 찾아서 안디옥으로 데려온다.(26)

바나바와 사울 둘이서 1년간 교회에서 큰 무리를 가르쳤다.(26) 할렐루야.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26) 아멘.

 

한 사람을 선택하려고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안디옥에서 다소로

찾으러 가는 사람도 대단한 사람이고

만나서 안디옥에서 1년간 동역하며 말씀을 가르치는 자도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21) 가능한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바울과 바나바가 동역하는 1년만에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지금까지는 '제자들', '성도들', '형제들'  '믿는 사람들'이라는 단어로 불렸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예수쟁이란 말과 비숫한 의미이지 않을까?

 

예수쟁이란 말을 들어 본지 오래인것 같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의 의미에 합당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 아버지

예루살렘에서 핍박 받은 일 때문에

흩어졌던 무명의 성도들에 의해서 이방의 교회

안디옥교회의 생성 모습을 봅니다.

주의 손이 함께하심으로 헬라인에게도 복음이 선포됨을 봅니다.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한 사람 바나바를 봅니다.

불원천리 마다않고 다소까지 사울을 찾아가 함께 동역하는 모습을 봅니다.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는 모습을 봅니다.

나도 그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수 있도록

예수쟁이로 살게 하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