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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신년예배 (2025.01.01)

다이나마이트2 2025. 1. 1. 11:12

할렐루야! 다시 오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날인데 우리의 마음이 참 어둡고 힘든 날들입니다. 말씀을 듣기 전 잠시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먼저 무안 공항에서의 참사로 인하여 희생된 많은 분들의 가족들을 위로하고, 하나님, 그 가족에 하늘의 위로와 소망 주시고, 그 마음에 말할 수 없는 슬픔과 탄식, 억울함과 원통함, 아픔과 슬픔을 어루만져 주시옵소서 온 국민이 함께 슬퍼하며 그들의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저희들 되기 원합니다. 두 번째 기도 제목, 어지럽고 혼란한 정치 질서가 속히 바로 잡히게 하옵소서. 국민들 마음속에 있는 당황과 낙심, 절망과 혼란, 분노와 아픔,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이 씻어지게 하여 주시옵시고, 거짓과 부정, 음난과 악독한 지도자들은 무너지게 하여 주시옵시고, 참되고 의롭고 정직한 지도자들 바로 서게 하여 주시고, 이 나라 바로 다스릴 수 있는 이들로 하나님께서 세워주시고 온전케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주시고 하나님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더 이상 혼란해지지 않도록 모든 혼란한 소리들이 잠잠케 되게 하여 주시고, 정말 하나님의 공의가 바로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 민족이 미래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 다툼과 분열이 사라지고 화합과 질서가 회복되는 나라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 역사하여 주옵소서. 조용히 함께 1분간 침묵으로 기도하며 나가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무안 공항에서의 끔찍한 사고로 많은 가족들이 비통한 슬픔 속에 처해 있습니다. 온 국민들이 그 슬픔을 나누어 가지려 해도 씻을 수 없는 아픔을 하나님께서 치료하여 주시고 이 나라를 치유하여 주시옵소서. 정치적 혼란으로 인하여 국민들의 당혹감과 낙심과 절망, 주께서 아시오니 이 땅을 고쳐주시옵소서. 하루속히 질서가 회복되도록 하나님 역사하여 주옵소서. 온 국민들 마음을 같이 할 수 있는 나라 되게 하여 주시고, 증오와 미움, 다툼과 분열, 모든 상처로부터 비롯된 갈등이 씻어지게 하여 주시고, 이 나라 민족이 참되고 의로운 질서로 자유 대한민국의 질서로 하나님께서 이 땅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이룰 수 있는 나라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밤입니다. 이 밤에 모두가 하나님 바라보며 나왔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기를 원합니다. 주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새 영을 부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역사적으로 역사의 미래에 대한 잘못된 두 가지 시각이 있어 왔습니다. 첫째는 문명의 발전과 더불어 세상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믿음입니다. 진화론적 낙관주의입니다. 유토피아를 향해 계속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유토피아라는 말은 헬라어 후토포스에서 나왔습니다. 해석하면 '그런 곳은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 세상은 점점 나빠지고 있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라는 현실 도피주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이 두 가지 견해와 다른 시각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은 역사를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역사를 심판하실 것이기에 우리는 역사에 대하여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의 마지막 때를 살고 있습니다. 이 마지막 때에 일어나는 일들을 우리가 바라보면서 당황하기보다 우리는 마지막 때를 준비해야 합니다. 마지막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에 초점을 두기보다 마지막 때에 가장 중요한 한 분, 살아계신 인격이신 예수님 그분께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통해 역사를 완전히 새롭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마지막에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이 있습니다. 그 역사의 마지막 때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의 새로운 시작이 될 것입니다. 교회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신앙 고백인 사도 신경에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구속사역의 각 단계에 함께 참여합니다. 예수님의 고난, 예수님의 죽음, 예수님의 부활, 예수님의 승천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 이 모든 과정에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참여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우리의 옛 사람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었음을 체험합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예수님을 믿는 이들의 부활의 생명이 우리 가운데 임하십니다. 예수님의 승천과 함께 우리는 하늘에 앉힌 바가 된 사람들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다시 오심과 함께 우리는 영광 가운데 나타날 것입니다. 대개 우리의 믿음에 있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부활, 승천까지는 경고한 믿음을 가져 가면서 살아갑니다. 마지막 단계인 재림에 대해서는 우리가 간과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는 마치 예수님께서 어제 죽으셨고 오늘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셨고, 내일 다시 오실 것처럼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재림이 바로 오늘 내일 일어나는 살아있는 믿음, 긴장감 있는 믿음, 절박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을 경험하였고,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그 생명을 경험하였고, 이제 예수님의 다시 오심과 함께 우리의 정체가 드러나고 우리가 과연 어떤 존재인가가 확실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4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한목소리로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가운데 나타날 것입니다.”(3:4)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영광 가운데 나타나실 때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가운데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소망이 우리의 신앙을 얼마나 견고하게 세워주는지 모릅니다. 이것을 세워주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이 요한 계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쓰여질 그 당시에는 로마 제국 도미티안 황제 시대 황제를 숭배하도록 요구받는 요구 정도가 아니라 그 명령에 따르지 않는 이들은 죽임 당하는 그런 시대에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시라고 고백해야 하는 순교적 각오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그 시대 성도들에게 주어졌습니다. 또한 그 시대의 성도들뿐만 아니라 오고 오는 모든 시대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어느 시대를 살아가든 우리가 그 시대를 이기기 위해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바로 참되신 왕이신 만왕의 왕이신 만유의 통치자이신 그분만을 예배해야만 참되게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타락하였던 시대들의 공통점은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중세의 어두운 역사가 그랬습니다. 종말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요즘 시대에는 시한부 종말론 같은 잘못된 종말론을 주장하거나 이단 사이비들이 요한계시록을 잘못 해석함으로써 많은 성도들을 오류에 빠지게 하는 그런 흐름 때문에 계시록의 말씀을 멀리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마는 우리는 계시록을 포기해서는 안 되고, 또한 계시록에 나타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 또한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마틴루터가 말한 대로 예수님이 내일 다시 올 것처럼 소망했고, 또 내일 다시 오시기를 간절히 소망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로마 제국의 핍박을 이겨내도록 만들었던 초대교회의 생명력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이루실 모든 일들에 대한 말씀을 증언한 것입니다. “이 모든 말씀에 무엇인가를 더하면 재앙이 더해질 것이오, 이 모든 말씀의 무엇인가를 빼면 너희도 주어진 그 영광스러운 분깃에서 빼질 것이다라고 경고하셨죠. 그리고 모든 것을 증언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참으로 속히 갈 것이다. 그 음성을 들은 사도 요한은 이렇게 응답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요한계시록 2220절의 말씀을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이 모든 것을 증언하시리라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내가 속히 갈 것이다.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사도 요한뿐만 아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함께 모일 때마다 우리 주님의 오심을 사모했습니다. 그래서 함께 인사할 때마다 주 예수님 오시옵소서이것을 인사말로 말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622절 후반부에 보면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문구가 나옵니다. 이 말씀의 내용은 헬라어로 보면 마라나타, 마르나타는 사실 헬라어가 아닙니다.아람어인데 아랍어를 헬라어로 음으로 쓴 것이죠. 그래서 마라나(maraan)이래서 “Our Lord” ‘우리 주님이라는 뜻이고 타(tha)‘Come’ ‘우리 주님 오시옵소서그래서 ‘마라나 타 아람으로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만날 때마다 ‘마라나타, ‘마라나타로 서로 인사하며 고난과 핍박 속에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며 그들의 소망은 예수님의 다시 오심 그것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소망하는 것, 예수님의 다시 오심이 두려움이 아니라 그들에게는 참으로 복된 소망되었기 때문입니다. 디도서 2, 12~13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를 교훈하심으로 경건하지 않은 것과 세상의 정욕을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 가운데 이 세상에서 살며 복된 소망과 위대하신 하나님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날 것을 기다리며 살도록 하셨다(2:12~13)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바라보는 것 그것은 참으로 복된 소망입니다.

2025년 맞이하면서 오늘 이렇게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영적 목표는 바로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복된 소망으로 여기는 것입니다.올 한 해 동안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가? 사도 요한처럼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간구할 수 있는가? 만일 예수님께서 내일 오신다면 예수님을 기쁘게 만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또한 예수님이 내일 오신다면 나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바로 이러한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며 살아가는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올해의 표어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언제 다시 오십니까? 예수님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때에 갑자기 오실 것이라고 곳곳에서 말씀했습니다.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하늘에 있는 천사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때를 정확하게 알려주시면 사람들이 더 많이 분명하게 변화되지 않을까요? 그 반대일 것입니다. 만일 사람들에게 그 때를 알려주시면 악한 인간들은 그 때를 이용하여 악하게 이용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분명 가까이 왔으며 속히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 전에 일어날 징조들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며 곳곳에 지진과 기근이 있을 것이며, 적 그리스도와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현혹케 하는 일들, 그 밖에도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미워하며 곳곳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예수님이 어느 때에 오셔도 이미 충분한 징조들이 있습니다. 이미 때가 가까이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히 오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초대교회 성도들이 데살로니가에서도 질문하죠. 속히 오신다고 했는데 왜 안 오시느냐?라고 할 때 사도 바울을 통해 이런 말씀을 주셨어요.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걸 잊지 마라. 하나님께서는 천 년 가까운 세월을 하나님의 사랑의 인내로 하루처럼 여기신다는 거예요.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거죠. 하나님께서 속히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보내실 것이지만 하나님의 때에 오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때가 가까이 왔으며 속히 오실 것이라고 믿어야 어느 때에 오셔도 그분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럼 예수님은 어떻게 다시 오십니까? 예수님은 가시적인 몸으로 다시 오실 겁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 말씀하셨죠. 제자들이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님은 부활하신 몸이며, 그 부활하신 몸은 성육신 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몸입니다. 말씀이 육신이되어 이 땅에 오신 그 몸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완전히 죽으셨고, 그 몸이 다시 사셨고, 다시 사신 몸이 부활하셨고, 부활하신 그 몸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 가시적인 몸으로 오셔서 우리를 예수님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그것은 상상 속의 영역이 아니라 구체적인 장소이며, 우리가 딛고 있는 땅과 같은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말씀합니다. 가시적인 몸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처음 오심에 대한 예언이 성경에 456회나 됩니다. 그 모든 예언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오심에 대한 예언도 확실하게 이루어질 것이죠. 성경에 예수님의 재림과 종말에 대한 예언이 1,518회나 됩니다. 456회나 되는 예언이 다 이루어졌다면 그보다 훨씬 많은 1,518회나 되는 예수님의 재림과 종말에 대한 예언은 확실하게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이 처음 오셨을 때는 구유에 오셨지만 다시 오실 때는 구름 타고 오실 것입니다. 처음 오셨을 때는 멸시와 고난을 받으셨지만 다시 오실 때는 영광과 존귀를 받으실 것입니다. 처음 오셨을 때는 죄인의 모양으로 오셨지만 다시 오실 때는 만왕의 왕으로 오실 것입니다. 처음 오셨을 때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알려주며 오셨지만 다시 오실 때는 모든 사람들이 눈으로 보고 알 수 있도록 오실 것입니다. 처음 오셨을 때는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지만 다시 오실 때는 더 이상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 오셨을 때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오셨지만 다시 오실 때는 우리의 죄와 상관없이 온전한 구원을 완성하러 오실 것입니다. 처음 오셨을 때 성도들은 믿음으로 모든 것을 붙잡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오실 때 믿음으로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이 실제로서 완전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예수님이 처음 오셨을 때는 역사가 BCAD ‘Before Christ’,‘Anno Domini’로 나누어졌다는 거, 다시 오실 때는 역사의 마지막인 마침표가 찍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다시 오십니까? 예수님이 언제 어떻게 오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다시 오시는 걸까? 예수님께 다시 오신 이유는 처음 오셨을 때 사역이 미진했거나 부족했거나 혹은 처음 오실 때와 다른 사역을 보충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이루신 것을 궁극적으로 완성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처음 오실 때의 목적과 다시 오실 때 목적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처음 오셨을 때 이미 이루신 것을 완전히 완성하려 오시는 것입니다. 언젠가 제가 설교하면서 한번 인용한 두 표를 다시 한 번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설명하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첫 번째 오심으로 천국이 도래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우리가 천국에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천국이 우리에게 옴으로써 우리가 들어가게 되는 거죠. 그 천국이 열린 것은 막힌 귀장을 지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모든 막힌 담을 허무시며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담당하심으로 그 천국의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셨기 때문이죠. 그것이 D day입니다. 2차 대전 때 연합군이 완전히 이제 승기를 잡고 승리를 확인하게 되는 Decision Day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항복이 이루어지지 않았죠. Victory Day는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께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이제 다시 오실 때 그 Victory Day의 완전한 하나님 나라의 승리의 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이미 이루신 하나님의 나라를 완전히 이루신 때가 올 것이라는 거죠. 우리는 이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중국적자입니다. 이 세상의 시민이며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이중국적으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렇게 두 단계에 걸쳐서 오는 거예요. 두 개의 산이 저 멀리서 보면은 하나의 산에 두 봉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죠. 그런데 가까이서 보면 그 두 산 사이에 큰 평지가 끼어 있지 않습니까? 그처럼 우리는 이 두 산 사이에 끼어 있는 세월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이루신 것을 완전히 이루시려고 오는 것입니다. 왜 한 번에 오시지 않고 두 번에 걸쳐서 오십니까? 여러 번 제가 설교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이 한 번 오셔서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는 이들이 너무나 많기에 하나님은 이 구원의 은혜를 주시는 이 기간을 허락하심으로 우리에게 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은혜의 때, 구원받을 만한 이 때를 우리에게 허락하신 거예요. 그러므로 이 기간은 선교의 때요, 전도의 때요, 회개의 기간인 것입니다. 다시 오실 때는 더 이상 회개의 기회, 구원의 기회, 은혜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역사의 마지막에는 더 이상의 회개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마지막 예수님이 다시 오심으로 이루실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스가랴 14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날이 오면 여호와께서 온 세상의 왕이 되시며 오직 여호와만 홀로 주가 되실 것이다. 오직 한 분이신 그분의 이름만이 섬김을 받을 것이다.”(14:9) 이것이 다시 오시는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다시 오셔서 악을 심판하실 것입니다.그러나 심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심판하심으로 이루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오직 하나님만이 온 세상의 왕이시며 통치자이시며 홀로 주님이 되시고 그분의 이름만이 섬김 받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누가 역사의 주권자이며 누가 역사의 진정한 통치자이신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은 반역의 세상입니다.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을 배반하고 대적하는 이 무리들이 있는 이 세상에 예수님은 마치 군사령관처럼 이 반역한 세상에 들어오셔서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섬기심으로 모든 십자가가 승리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다 이루신 그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다시 오심으로써 완전한 하나님께서만 영광 받으신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신다는 거죠. 계시록에서 그것을 말씀하고 있어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신약의 어떤 다른 책보다도 하나님의 이 우주의 통치자이십니다. 하나님이 알파 오메가이시고, 창조주이시며 심판자이며 모든 역사를 다스리시며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심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에 나타난 이 하나님의 승리,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이 온전히 회복되고 영광 받으시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도 살아있을 수 있었죠. 그러나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 이후에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이들은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의 마지막 때는 참되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는 구분되는 것입니다. 알곡은 모아서 창고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태워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소망한다면, 예수님께서 내일 다시 오실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자신을 정결케 할 것입니다. 요한일서 32절에서 3절 말씀을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과 같이 될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가 그분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그분을 향해 이 소망을 가진 사람은 그분께서 정결하신 것처럼 자신을 정결하게 합니다(요일3:2~3)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다시 만날 소망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가 그분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볼 것을 소망하는 사람은 자신을 정결케 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믿음으로 바라보지만 그때는 있는 모습 그대로 눈과 눈을 마주 대하며 만나볼 그때가 있을 것을 믿고 소망하는 사람은 주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자신을 정결하게 한다는 거예요. 사단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살고 있는 이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겁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사셨다가 죽으셨다. 거기까지만 믿게 하기도 하고 부활을 믿지 않게 하기도 합니다. 또 부활은 믿더라도 다시 오실 것을 믿지 않게 합니다. 어느 단계든 빼버리면 우리의 소망은 무너지는 거죠. 십자가를 빼버리고 부활을 빼버리고 아니면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빼버리던 사단은 교묘한 인간의 언어로 심지어는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예수님의 역사적 실존도 부정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교묘한 언어로 이념화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교묘한 말로 없던 것처럼 말하고 제가 어느 아티클을 보니까 깜짝 놀랐는데, 하버드 대학에 신학과 교수라는 사람이 논문이 발표됐는데 예수님이 쌍둥이였다. 그래서 쌍둥이가 부활을 날마다 소망했는데 억울하게 죽임당한 자기가 부활한 것처럼 그러고 말았다. 그게 최신 뉴스로 돌아다니고 있더라고요. 교묘한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어떻게든 믿지 않게 하고 예수님의 다시 오심은 생각하지도 않게 하고, 교회 안에 들어온 이나 사이를 통해서 계시록 혼란기에서 예수님의 다시 오심이 그것만 분명하면 되는데, 이 계시록에 나타난 교묘한 상징들, 환상들 이런 것을 희한하게 해석해서 이게 뭐를 의미하고 뭐를 의미하고 여러분 계시록에 갔다는 모든 어떤 환상이나 이것을 역사가 있던 것을 어떻게 대입하는 거는 대부분 잘못된 것입니다. 분명한 핵심은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거 그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한 거에 초점을 둬야지.이 환상은 역사에 뭘 얘기하고 이것은 뭘 얘기하고 여기는 누구를 얘기하고 이건 대부분 다 제가 보기엔 다 잘못된 것들이에요. 역사에 일어날 일들을 하나씩 맞추라고 주신 게 아니라 큰 그림 속에서 예수님의 다시 오심이 얼마나 분명한지를 구약의 다양한 그러한 모티브를 통해서 우리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서요. 계시록을 읽으면 읽을수록 혼란스럽다. 잘못 읽는 거예요. 지금 거기서 나오셔야 돼요. 지금 중요한 것은 그분을 향해 이 소망을 가진 사람은 자신을 정결하게 한다는 것, 또한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소망하는 이들은 주 예수의 은혜를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에 힘쓴다는 거예요. 계시록의 마지막 구절을 보십시오. 21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사람들과 함께 있기를 빕니다.아멘(22:21)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응답한 이후에 사도 요한의 마음속에 일어난 마음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주 예수님의 은혜가 전해지기를 소원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거예요.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소망하는 성도들은 바로 선교에 대한 헌신, 예수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 은혜가 전해지고자 하는 마음으로 연결된다는 겁니다. 2025년 한 해,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이 소망의 기도를 드리는 모든 성도들,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주 예수의 은혜가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일에도 헌신하는 우리 온누리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합니다. 아니 주 예수에 오시옵소서 날마다 고백하는 2025년 한 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새로운 내일을 허락하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잊을 것을 잊고 또한 기억할 것을 기억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우리의 기억 속에 가장 중요한 소망의 내용으로 삼고 한 해를 승리하며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