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교회관련

2024년 권사 안수집사 임직예배 1부 (2024.11.30)

다이나마이트2 2024. 11. 30. 22:28

2024년 11월 30일(토) 오후4시 온누리교회 양재 사랑홀에서 2024년 권사 안수집사 임직 예배가 있었다.

오늘 임직식에는 명예권사 6명, 권사 143명, 안수집사 504명 (남자 170명, 여자 334명)이 임직했다. 

오후 4시 정각에 장동원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교역자 찬양팀과 밴드의 찬양으로 임직 예배를 시작한다.

천사들의 노래가 

1. 천사들의 노래가 하늘에서 들리니 산과 들이 기뻐서 메아리쳐 울린다 영광을 높이 계신 주께 영광을 높이 계신 주님께
2. 한밤중에 목자들 양떼들을 지킬 때 아름다운 노래가 청아하게 들린다 영광을 높이 계신 주께 영광을 높이 계신 주님께
3. 베들레헴 달려가 나신 아기 예수께 꿇어 경배 합시다 탄생하신 아기께 영광을 높이 계신 주께 영광을 높이 계신 주님께
4. 구유 안에 누이신 어린 아기 예수께 우리들도 다 함께 기쁜 찬송 부르자 영광을 높이 계신 주께 영광을 높이 계신 주님께 아멘

임직자와 축하객들로 사랑홀이 가득찼다.

예배의 중요 순서를 맡으신 목사님들도 앞에서 열심히 찬양하신다.

예수 우리들의 밝은 빛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는 주 의의 길을 따라가는 주의 자녀들에게 항상 밝은 빛을 비추시네

그는 구원의 주 하나님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시네 주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부어 주시는 놀라운 주님의 영광

하늘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주의 영광 이 땅에 오셨네 어둠을 밝히고 새 생명 주시네 영원히 빛나는 나의 예수님

높이 영광과 찬양받으실 그 이름 경배합니다 슬픔을 거두고 내게 자유 주시네 기쁨의 노래를 영원한 나의 빛 예수께

예수 우리들의 밝은 빛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는 주 의의 길을 따라가는 주의 자녀들에게 항상 밝은 빛을 비추시네

그는 구원의 주 하나님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시네 주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부어 주시는 놀라운 주님의 영광

하늘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주의 영광 이 땅에 오셨네 어둠을 밝히고 새 생명 주시네 영원히 빛나는 나의 예수님

높이 영광과 찬양받으실 그 이름 경배합니다 슬픔을 거두고 내게 자유 주시네 기쁨의 노래를 영원한 나의 빛 예수께

하늘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주의 영광 이 땅에 오셨네 어둠을 밝히고 새 생명 주시네 영원히 빛나는 나의 예수님

높이 영광과 찬양받으실 그 이름 경배합니다 슬픔을 거두고 내게 자유 주시네 기쁨의 노래를 영원한 나의 빛 예수께

나의 믿음 주께 있네 십자가 능력이 내 영광되었네

주께서 우리를 승리케 하셨네 나의 능력 나의 소망 주께 있네

오직 예수 나의 믿음 십자가 능력 속에 빛나는 영광

내 모든 승리로 주님께 영광을 나의 능력 나의 소망 주께 있네

대표기도 : 민문기 장로님 (당회운영위원)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133:1~3)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선행하시는 뜻 가운데에 오늘 권사 안수 집사의 임직예배를 드리게 하시니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성령님 예배 가운데 운행하여 주시어 하늘의 은혜가 임하게 하시옵소서.

오늘 임직을 받는 모든 분들을 예수님의 보혈로 정결하게 하시고 성령 충만하게 하시사 하나님 나라의 신실한 청지기로서 맡은 귀한 직분을 넉넉히 감당하는 작은 예수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날마다 바라보며 서로 사랑으로 남을 귀하게 여기며 각자에게 주신 성령의 은사를 따라 기쁨으로 주님의 피로 사신 몸된 교회를 섬기는 예배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담대하게 증거하며, 온누리교회의 비전인 사도행전 바로 그 교회를 세워가기 위하여 목숨을 다하여 표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충성된 종들이이 되게 하시옵소서.

저희 모든 성도들이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성령 안에서 사랑으로 교제하며 기도하기를 힘써 그리스도의 강한 군사가 되어 가정과 교회와 열방에 하나님의 복을 흘려 보내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옵소서.

진심으로 성령을 사모하고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예수님의 사랑에 힘입어 세상에 나아가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이 때에 온 성도와 거룩한 신부로 준비되게 하시며, 영과 혼과 몸이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 하실 때에 흠이 없게 보존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말씀을 전하시는 이재훈 위임목사님을 성령으로 충만케 하사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저희 모두가 마음밭이 기경이 되어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주님의 신신한 종이 되기를 결단하는 귀한 은혜의 시간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존귀하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특 순 : 세라핌 합창단

특순 : 세라핌 합창단 "샤론의 꽃 예수" 핸드벨로 참 은혜롭게 찬양과 연주를 해 주셨다.

사회  : 박종길 목사님

임직 받으시는분들 축하합니다. 서로 서로 인사하십시다. 임직을 축하합니다. 축복합니다.

그리스도의 담대한 증인이 되십시요.

축복송 : God bless you

성경봉독 : 마태복음 20장 1~16 (우리말 성경)

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하늘나라는 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어떤 포도원 주인과 같다.
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그 주인은 하루 품삯으로 1데나리온을 주기로 하고 일꾼들을 포도원으로 보냈다.
3.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오전 9시쯤 돼 그가 나가 보니 시장에 빈둥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그는 그들에게 ‘너희도 내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적당한 품삯을 주겠다’라고 했다.
5.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그래서 그들도 포도원으로 들어갔다. 그 사람은 12시와 오후 3시쯤에도 다시 나가 또 그렇게 했다.
6.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그리고 오후 5시쯤 다시 나가 보니 아직도 빈둥거리며 서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왜 하루 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서 빈둥거리고 있느냐?’ 하고 물었다.
7.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그들은 ‘아무도 일자리를 주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주인이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도 내 포도원에 와서 일하라.’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날이 저물자 포도원 주인이 관리인에게 말했다. ‘일꾼들을 불러 품삯을 지불하여라. 맨 나중에 고용된 사람부터 시작해서 맨 처음 고용된 사람까지 그 순서대로 주어라.’
9.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오후 5시에 고용된 일꾼들이 와서 각각 1데나리온씩 받았다.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맨 처음 고용된 일꾼들이 와서는 자기들이 더 많이 받으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각 사람이 똑같이 1데나리온씩 받았다.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그들은 품삯을 받고 포도원 주인을 향해 불평했다.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나중에 고용된 일꾼들은 고작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뙤약볕에서 고되게 일한 우리와 똑같은 일당을 주시다니요?’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자 포도원 주인이 일꾼 중 하나에게 대답했다. ‘여보게 친구, 나는 자네에게 잘못한 것이 없네. 자네가 처음에 1데나리온을 받고 일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그러니 자네 일당이나 받아 가게. 나중에 온 일꾼에게 자네와 똑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네.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내가 내 것을 내 뜻대로 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은가? 아니면 내가 선한 것이 자네 눈에 거슬리는가?’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이처럼 나중 된 사람이 먼저 되고 먼저 된 사람이 나중 될 것이다.”

말씀 선포 : 이재훈 위임 목사 "나중된자 먼저되고 먼저된자 나중 되리라"(마20:1~16)

할렐루야!(아멘) 오늘 임직 받으시는 귀한 분들 축하드립니다. 임직을 받는 그 의미를 바르게 알고 또 오늘의 임직이 여러분의 일생의 섬김의 귀한 전환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권사로 안수집사로 여러분들에게 임직을 드리는 것은 그동안 여러분들이 교회 안에서 여러 모양으로 섬김의 공로와 그 헌신에 대한 댓가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임직은 우리의 수고에 대한 대가나 혹은 어떤 헌신의 성취로서 부여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질서와 다를 바가 없는 하나의 틀이 될 것입니다. 분명히 교회의 지도자는 세상의 원리와 다른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 근거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한 기업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다 공동체 안에서 분명 수고하고 봉사하고 헌신된 분들이기 이 자리에 있습니다. 또 여러 양육 과정을 통해서 성실하게 참여하여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들이 그 부르심 앞에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교회 이름으로 부르셨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직분은 그 부르심에 합당한 은사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교회 공동체를 통해 확인하고 그것을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수고와 헌신은 부르심을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부르시는데 단지 구원으로만 부르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백성으로만 부르지 않고 그 나라가 이에 쓰임 받도록 우리를 사용하시기 위하여 은사를 부어 주십니다.

그 은사는 오늘 세라핌 합창단이 연주한 것처럼 핸드벨은 각기 의미가 다릅니다. 오늘 핸드벨을 연주하는 사람들 보니까 25년 전에 제가 차세대 담당할 때에 샀던 핸드벨입니다. 25년 된 핸드벨입니다.(~) 근데 제가 그 때 헌신 예배를 할 때에 하 목사님께 졸랐습니다. 핸드벨을 사 주십시오. 그래서 목사님께서 어디서 예산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핸드벨을 사주셔서 핸드벨을 시작했죠. 제가 고등학교 때 내가 핸드벨에 완전히 미쳤 있어서(하하하) 요즘처럼 성탄 시즌 때마다 가까이 돌아다니면서 연주했던 기억이 나서 어린 자녀들이 이때 악기로 함께 연주 하는 모습을 통해서 결국은 그 공동체 의식, 그런 훈련이 필요하다라는 생각에서 핸드벨팀을 하나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악기 하나 하나를 다 얘기 할 수는 없지만 아시는 것처럼 사람이 여러음을 다내는 그런 악기가 많지 않습니까? 거의 모든 악기가 한 사람이 여러 음을 다 내는데 이 핸드벨은 한 사람이 한음 혹은 두음씩 여러 사람이 나누어 냅니다. 한 음 또는 두음씩 나눠 가지고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음을 내야만 연주가 되는 것입니다. 한 곡이 잘 완성되기 어려운 것이 그래서 그렇습니다. 곡이 완성이 될수록 더 같이 연습을 해야 합니다. 언젠가 연습을 하는데 제가 지금 키가 고등학교 때 키였기 때문에 (~) 큰 종을 담당했습니다. 큰 종을 이렇게 들고 있으면 들고 있는 것 만으로도 힘이 듭니다. 그 종이 이제 주로 여러 번 쳐야 되는데 그 악기의 원리가 이렇게 아래서 치면 종소리처럼 펴져 나가게 되는데 한 박자, 한 박자 이렇게 음을 끊어줘야 합니다. 계속 울리고 있으면 소리가 섞여서 도대체 무슨 노래인지 정확한 타이밍에 나와야 되고, 정확한 타이밍에 자신의 소리를 죽여야 돼요. 근데 작은 종은 소리를 죽이기가 쉬운데 큰 종을 소리를 죽이기가 어려워 몸에 갖다 대야 합니다. 몸에 갖다대면 몸이 울리니까 내가 몇 번 안 갖다 댄 적이 있어서 지휘자에게 혼난적도 있습니다. 그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새록새록 한해를 목회 할할 때 생각들이 납니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소리로 하나의 곡을 만들어 가는 거예요. 똑같은 직분을 가진 사람이 없고 고유한 부르심으로 각자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너는 왜 다른 사람처럼 되지 못했어? 그렇게 하면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다른 세상과 거기서 우리를 부르시지 않습니다. 너 라면 할 수 있어. 나는 너의 섬김을 통해 나는 너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나타내고 각기 다른 사람에게는 각기 다른 은사가 있어 그것이 모두가 다 합력하여 하나가 되어서 반드시 나와야 되는 타이밍에 나와야 되고 또 자신의 소리를 죽여야 할 때에 죽여야 하는 참 영적인 그런 능력과 연습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자기가 나가야 될 때가 아닐 때 나가면 이것은 노래 자체가 아니게 되고 또, 마지막에 땡 하고 나와야 되는데 그 소리가 안 나오고도 없어도 모든 노래가 망가지는 거죠. 어떤 핸드벨은 곡 전체에서 딱 한 번밖에 안 나옵니다. 근데 다른 사람들이 계속 열심히 하는데 자기는 한 번밖에 안 나온다고 돌아가 버리면 전체가 다 망가지게 됩니다. 단 한 번 나오더라도 그 한 번을 하나님은 소중하게 보십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께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부르심 가운데 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여러분들을 특별히 이제 섬기는 자로 부르실 것입니다. 이렇게 그 안에 여러 가지 다양한 여러분들의 은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 이 직분을 가지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들을 섬기는데 일어나지 말아야 될 문제들이 많다라고 합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으면 섬길수록 오래 섬길수록 더 큰 은혜와 기쁨이 더 큰 감사가 있어야 하는데 때로는 여러 가지 일로 시험에 들고, 오히려 이단이 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반교회적인 결국 일어나서는 안 되는 바람직하지 않은 일들이 교회 안에서도 일어나는 것이죠.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교훈하시면서 이 모두 그의 마지막 말씀에서 ‘먼저 된 자 나중 되고, 나중 된자가 먼저 될 것이다라는 것이 그래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는 안 되는데 일어나는 현상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먼저나중이라는 것은 단지 순서의 개념보다는 여기서 먼저바람직한’, ‘가치있는’, ‘그래야 하는이런 의미입니다. ‘나중이라는 의미는 바람직하지 않는’, ‘가치없는’, ‘그래서는 안되는이런 의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것은 베드로에게 1차적으로 묻는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마태복은 1927절에 말씀에 보면 “우리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으니 무엇을 얻겠습니까?” 베드로의 마음속에 자신의 헌신에 대한 그 대가가 그 마음속에 원하는 대가가 있었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영생을 받을 것이고 나와 함께 성취할 것이다.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의 보상이 아닌 영원한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의 보상이 있을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런 중요한 것은 영원한 나라에서의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고 이 땅에서의 어떤 보상을 기대하는 것인가? 그것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이 믿음을 주시니 1차적으로는 베드로에게 주시는 말씀이고 나가서는 베드로와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당시의 제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이고, 또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으니 우리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일종의 기대 심리, 보상 심리, 공로심리 이런 것들이 제자들의 마음속에 그 짧은 기간이지만 먼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마음속에 스물스물 올라오고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 해 줍니다. 먼저 된자가 나중되고 나중된자가가 먼저 된다.” 이 말씀을 제일 싫어하는 분들이 교회에 오래 다녔으나 직분받지 못한 분들입니다. (하하하) 나도 직분 받지 못했는데 늦게 온 자가 직분을 받았다. 그런 의미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일면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오래 동안 교회 출석을 했는데 나에게 바라는 건 뭐지?라는 어떤 기대 심리, 보상 심리, 공로 심리가 있다면 그 분은 분명 오랫동안 예수님을 따랐고 먼저 헌신된 사람이지만 현재 바람직하지 않은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먼저 된자들이 있다는 겁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가장 먼저 예수님을 따른 제자아니였습니까? 또 누구보다도 더 예수님을 더 깊이 헌신하기를 원하는 제자 아닙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나서는 제자 아닙니까? 그러면 이 베드로의 마음속에는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보상심리, 공로심리인 거예요.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런 면을 지적하십니다. 너는 먼저 된자이나 나중 된자이다. 그러나 반대로 예수를 믿은 지 얼마 안 됐습니다. 그런데 그 영혼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감격이 있습니다. 분명 나중 된 자 같은데 먼저 된자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헌신하고 이렇게 직분을 받고 이제 한 20, 30년 되었습니다. 나도 직분을 받은 사람이야 라는 것을 자랑하게 되면 도리어 그것이 나중 된자가 되어버린다 이거예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일들이 교회 안에서 일어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랑하는 귀한 재직 여러분 우리 온누리교회의 귀한 직분자들은 먼저 된 자로서 계속 먼저 되시길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깨닫게 하기 여기 포도원 품꾼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주인이 추수를 하기 위해서 일꾼들을 불러모습니다. 이 포도라는 과일의 특성상 짧은 기간에 빨리 수확을 해야합니다. 일꾼이 많이 필요합니다. 이른 아침 아마 오전 6에 나가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불러서 한 데나리온을 주겠다 약속합니다. 한 데나리온은 당시의 4인 가족 기준하여 하루를 먹고 살 수 있는 정도의 돈입니다. 일손이 부족하여 이제 오전 9에 또 일터에 나가서 일 할 사람들을 불러모습니다. 이제 당신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주겠다. 정오에도 또 나갑니다. 오후 3시에도 또 나갑니다. 오후 5에도 일할 시간이 1시간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추수할 일꾼을 찾으러 이 주인을 계속해서 일꾼들을 불러모습니다. 하루 일과가 끝났습니다. 이제 주인은 나중 온 인부부터 임금을 지급하라고 합니다. 1시간밖에 일하지 않았으니 1/12 데나리온을 품삯으로 지불하겠죠. 봉투를 주었습니다. 이렇게 품삯을 지불하는데 나중에 온 사람들 그 옆에 있던 사람들이 다 활짝 웃음지으면서 즐거웠죠. ? 1시간 일한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었으니까, 3시간 일한 사람은 얼마 입니까? 6시간 일하면 얼마일까요? 고등 수학이라서 너무 어렵습니까? (하하하) 이른 아침에 온 사람은 6시에 왔으니 12 데나리온을 받겠구나 생각 할 수도 있었겠지요. 그런데 모두가 한 데나리온씩만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제일 오래 일한 사람이 먼저 불평이 시작이 되죠. 나는 아침 6시부터 와서 12시간 일했는데 어떻게 1시간 일하는 사람과 동일하게 품사을 줍니까? 여러분 사회 노동법을 기준으로 보면 이건 진짜 불공정하죠. 이건 노동법에 제소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이 세상의 그리스도를 말씀하시는 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거예요.이 사회의 불평은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데 당연한 사회였습니다. 여기까지 주인 말이나 그렇게 불평하는 사람. 하루 종일 일하고 불평하는 사람은 두 가지를 잘 못 알고 있습니다. 첫째 내것을 가지고 내뜻대로 한 것이다. 라는 것이고, 두 번째 너는 나의 악함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나의 선함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나의 선함 그것을 비판한다고 예수님 말씀하시고 그 주인이 하루 종일 일한 사람에게 주어야 되는 마땅한 임금을 지불 할 때에 마땅히 덜 주어도 되는 사람들에게는 12분의 1, 3분의 1, 3분의 1만 줘도 되는 사람들에게 더 준 것이지, 덜 준 것이 아닙니다. 12 데나리온을 줘야 되는되 1 데나리온을 준 것이 아니라, 적게 줘도 되는 사람에게 더 준 것이지, 더 줘야 되는데 적게 주는 건 아니라는 말입니다. 나의 선함을 내가 악하게 보는냐? 이 원리를 우리의 믿음 생활 헌신에 적용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충성해서 받는 구원과, 어떤 사람은 겨우 헌신도 없이 간신히 예수님 믿고 받는 구원이 다른 구원입니까? 평생을 예수님 믿지 않겠다고 거부하다가 이제 죽음의 문턱 앞에서, 연로하신 부모님이 자녀들의 간곡한 기도와 권면으로 예수를 믿고 일주일 후에 세상을 떠나 돌아가셨다면 그분이 들어가는 천국은 여러분이 돌아가는 천국과 다른 천국입니까? 그러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러려면 뭐 하려 이렇게 열심히 헌신하며 믿어야 하나요? 제가 실제로 믿지 않는 분들의 어떤 모임에서 이런 질문을 나에게 하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목사님 이 세상에서 막 살다가 죽기 직전에 믿어서 천국에 간 사람이 있습니까? 생각나는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한편 강도가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 만나서 구원받았어요. 그랬더니 그분이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 살다가 죽겠습니다. (하하하) 마지막에 믿으면 되는데 뭐하러 예수에 얽매여서 헌신하고 희생하며 사는가? 마지막에 믿으면 구원받는다는데...(하하하) 기가 막힙니다. 그때는 내가 너무 당황해서 답변을 못했는데....(하하하) 다시 그분을 만나면 잘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은 누구나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십자가에서 구원 받은 강도는 예수님을 처음 만날 때 영접을 했다는 것입니다. 평생을 주를 위해 헌신한 사람이 받는 구원과 간신히 받는 사람이 받은 구원과 동일한 구원이라는 불평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만일 불평이 나온다면 천국에 가서 내가 이럴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믿은거 그런 불평이 나온다면 그게 천국일까요? 그렇다면 그 천국을 우리가 이 땅으로 앞당겨서 생각해 보지요. 우리가 열심히 수고하고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10, 20배 더 많이 헌신했는데 동일한 구원이라고 한다면 우리에게 더 많은 헌신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러면 집사들이 헌집사가 되고 새 집사가 되고 (하하하) 언제 대집사가 되고 뭐 이런게 붙어야 되는 것입니까? 그래서 우리의 마음속에 언제부터 인가 보상 심리, 인정 심리, 공로 심리 이런 것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선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질 수 있는 이 비유가 아니면 이렇게 하지 않고 하루 종일 포도원에서 일한 종이 만일 이렇게 응답했다면 어떻게 되어졌을까요? 이제 똑같은 상황을 두고 가장 오래 일한 종이 주님은 정말 멋지십니다.’ 아니 몇 시간 밖에 일하지 않은 종들에게도 똑 같이 한 데나리온씩 지급해 주시다니요. ‘주님은 정말 선하십니다’ ‘Wonderful!’ ‘놀랍습니다’ ‘제가 이런 주인이 운영하는 포도원에서 가장 많이 일 할 수 있는 것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다음에도 또 불러주십시오.’, ‘주님 정말 멋짓입니다라고 말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와 같이 먼저 된 자는 계속 먼저 되고 나중 된 자는 계속해서 나중 될 것이다이렇게 되지 않았을까요? 우리의 머릿속에 여러분이 평생 수고와 헌신하게 된 보상이 무엇인가? 이 말에 대한 대답은 헌신 그 자체가 가장 큰 보상입니다. 제가 이렇게 주님을 만나서 오랫동안 헌신할 수 있는 그 자체가 선하신 주님을 만나고 더 많은 일을 하는 그 자체가 보상이 되지 않으면 우리의 삶 공로의식 보상의식으로 차게 됩니다. 가장 먼저 믿은 베드로도 그렇게 빠지고 있습니다. 제자들도 그렇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도 그렇게 빠지게 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임직을 받으시는 어떤 직분이 우리의 자랑이나 우리의 성취나 또 우리의 공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선하신 주님의 더 많이 섬길 수 있는 일로 나를 불러주셨음을 감사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평생 헌신하며 여러분은 먼저 된 자들로서 계속 먼저 되실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뒤집어 지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어려워진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는 것은 먼저 된 자가 다 나중 될 때, 뒤집히는 일이 많을수록 교회는 어려워집니다. 뒤집어지는 일이 많이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저희의 자랑과 의와 공로가 아니라 선하신 주님을 높여드리고 그런 일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다른 어떤 교회에서 이 본분으로 설교를 하면서 정말 물어보지 말았어야 되는데 물어본 일이 있습니다. (하하하) 여러분 몇 시에 오셨습니까? 제가 초기에 설교를 하게 될 때에 이것을 물어 보지 말았어하는데 (하하하) 지혜가 없으니... 아침 6시에 오신분 손 들어보십시오 그랬더니 맨 앞에 앉은 담임 목사님이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하하하) 여러분 이 본문에 근거해서 여러분은 몇시에 오셨습니까? 오전 9시에 오셨습니까?나는 오전 9시에 왔기 때문에 임직자가 된 것이 아니라 우리는 다 1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일꾼입니다. 한 없는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불러주셨습니다. (아멘). 그것을 은혜로 여기고 섬길수록 더 큰 은혜로 더 많이 섬길수록 더 겸손함으로 더 많이 섬길수록 더 선해지는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일이 없으면 더 많이 일할수록 더 사나워지고 (하하하) 더 열심히 섬길수록 더 고집스럽습니다. 이건 뭐예요? 먼저 된 자가 아주 뒤집어지게 된 것입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직분이 여러분에게 그런 일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직분이 없었을 때는 그렇게 선하고 출성스러웠는데 직분를 받고 난 이후에는 이상하게 느꼈잖아요. 그러면 이거 뭔가 잘못된 거예요. 그렇때는 그냥 취소하고 싶은데 (하하하) 그래도 여러분 이렇게 뒤집어지는 일 없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오후 다섯시 추수하러 온 종처럼 일 할 수 있는 은혜 베셔서 일할 수 있는 은혜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충성스럽게 섬기며 또한 겸손하게 섬기며 나같은 자를 부르시고 은혜베푸신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섬기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의 평생에 이것이 나의 자랑과 공로와 의가 되지 않는 이기를 원합니다. 모두의 십자가에 못 박은 자로만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모두를 온누리 공동체로 불러주시고 각 사람을 불러 일꾼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를 불러주셨사오니 오후 5시에 온 일꾼으로서 우리가 행한 것에 넘치도록 은혜 베푸신 그 하나님의 은혜 앞에 온전히 응답하는 저희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받는 임직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바로 서며, 일평생 하나님께 더욱 헌신하는 종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