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교회관련

2024 장로수련회 '소풍' 2024.06.07

다이나마이트2 2024. 6. 8. 21:47

2024년 6월 7일(금) ~8일(토) 1박 2일간 홍천 비발디파크에서 2024년 온누리 장로수련회가 있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비발디 파크 측에서 마련해 주신 플랜카드인지 장로님 권사님 환영합니다.

2024 온누리교회 장로수련회 '소풍' 이라는 플랜카드가 행사장 입구에 설치되어 있었다.

무대에서는 어제부터 현장에 오셔서 음향 영상 세팅하신 분들이 리허설을 하시고 계셨다.

각 테이블에는 이렇게 브로셔와 볼펜, 생수, 명찰, 조 번호, 휴지, 곷 장식이 되어 있었다.

아쉽게도 준비 위원들 테이블에는 브로셔도 볼펜도 없었다.  

8시 50분경에 장로 합창단을 태운 버스가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을 했다.. 자랑스런 1530 동기 장로님 부부

가장 먼저 도착한 장로합창단 버스가 도착하고 바로 리허설을 진행하신다. 참 준비도 철저하신 것 같다.

비발디파크 메인 행사장인 그랜드 볼룸 앞에서는 안내가 진행되고 있다.

숙소 배정과 조배정등을 이곳에서 확인해 주신다. 당일 접수하시는 장로님들도 계신가 보다....

오랜 시간동안 함께 장로수련회를 준비해 오신 준비 위원들도 기도하고 행사 준비에 서로 소통하고 있다.

드디어 9시 50분경에 서빙고에서 출발한 1호차가 현장에 도착하고 있다.

3호차고 함께 도착을 한다.

준비위원장 이석일 장로님, 이재훈 위임목사, 이인용 당회서기 장로님이 헤드 테이블에 앉으셨고

수련회 행사를 시작 한다.

이린 시절 소풍을 앞두고 설레던 마음을 표현해 주는 우리의 주제 '소풍' 인트로 영상이 감동스럽게 상영이 되었다.

드디어 유제홍 장로님이 인도하시는 밴드와 싱어들의 찬양 인도로 전체 수련회가 진행 된다.

유제홍 장로님 찬양 인도는 참 탁월하다. 직업이 음악이 아니심에도 프로같은 신 분이시다.

찬양팀으로 매년 수고해 주시는 모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온누리교회 전체 장로님들 수련회이지만 경배와 찬양 청년들 예배 못지 않게 뜨겁다.

대표기도 : 손한기 장로님

특순 : 장로 합창단 " 참아름다워라"

참 자랑스러운 합창단이다. 교단에서도 운영하기 어려운 장로합창단인데 개 교회에서 이렇게 많은 단원이

이렇게 아름다운 찬양을 드리는 장로합창단 참 자랑스럽다.

설교 : 이재훈 위임목사 요나단 리더십 (삼상14:1~7)

1. 하루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 무기를 들고 있는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이리와서 저쪽편 블레셋 초소로가자."

그러나 요나단은 자기 아버지에게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2. 사울은 기브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미그론의 석류나무 아래 있었습니다. 그는 600명즘 되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는데

3. 가운데는 에봇을 입은 아히야도 있었습니다. 그는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의 아들이며 비느하스의 손자이며

실로에서 여호와의 제사장이였던 엘리의 증손입니다. 그들 가운데 아무도 요나단이 나간 것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4. 요나단이 블레셋 부대에 가기 위해서는 길목 양족에 서 있는 험한 바위들을 건너야 했습니다.

하나는 보세스라 불렀고 다른 하나는 세네라 불렷습니다.

5. 그 가운데 한 바위는 믹마스를 향해 북쪽에 서 있었고 다른 하나는 게바를 향해 남족에 서 있었습니다.

6. 요나단이 자기 무기를 들고 있는 부하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이리 와서 저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의 부대로 가자. 여호와께서 도우시면 우리는 승리 할 수 있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7. 무기를 들고 있는 부하 청년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저는 당신과 함께 할 것입니다." 아멘.

장로님들 오늘 왜 이렇게 평소보다 찬양을 더 잘하실까? 하하하 어려운 부분도 잘하시고, 더 신실하게 연습을 많이 하시는 분도 있기도 하세요. 그런데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부부 동반으로 오시 장로님들 노래를 더 잘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장로님들만 오실 때는 분위기가 조금 우울해요. 하지만 이렇게 부부가 함께 같이 해주시니까 너무나 밝아 보이고, 본인이 진짜 살은 있는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온누리교회 장로님들은 적어도 일년에 한번 정도는 다 같이 한 자리에 모여서 함께 그 동안 회의가 아니라 서로를 나누는 시간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 제가 제안을 해서 장로수련회 시작을 한 겁니다. 장로님들끼리도 서로 모르는 분들도 있고, 물론 이 자리에도 서로 모르는 분들도 틀림없이 있을 텐데... 자꾸 우리가 모여야 되고 또 캠퍼스별로 흩어져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짧은 시간이지만 이렇게 일방적으로 나누는 것보다는 이 기간 동안에 한 가지 원칙을 정하겠습니다. 이거는 진행하시는 장로님들과 상관없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 원칙은 아는 분들과 식사하고 있으면 무조건 벌금을 내는 것입니다. 노회에 가면 지시 사찰위원이라고 해서 임무가 그런 거 잡아는데 이제 감독관들을 오래된 장로님들을 임명해서 아는 분끼리만 모인다. 그러면 티켓을 발부해가지고 부족한 재정을 채우시기 바랍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모르는 분들을 하고만 이렇게 대화하고, 잘 모르는 분들과 시간을 갖고 그래서 이 정도 인원이 만일 온누리 교회 성도들이라고 생각하면, 이정도가 온누리 교회 전 성도라고 생각하면 수련회 한번 왔다갔다 할 때 모임이 끝나면 대부분 이 정도 성도가 있는 모임들은 서로 이 정도의 인원의 교회 역사가 38년, 40년 가까이 된다면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있기 때문에 여러분도 그런 교회에서 잘하는 분들이 계시고 그럴 겁니다. 그러면 대개 끝나고 아는 사람들과  습관적으로 가게 되고, 그러면 새로운 분들은 얘기할 상대도 없고, 괜히 이렇게 교회 주변을 빙빙 돌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가시는 데서 마음에 달리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미국의 어는 교회에서는 3분이라는 침묵 시간이 있습니다. 3분이라는 시간을 정해서 예배 후에 3분 동안 절대 아는 사람하고 대화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강제적으로... 그래서 이번 수련회에서 장로님들이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아는 분들과만 대화하시는 분들은 벌금을 부과해서 로잔 대회 준비에 부족한 재정으로 채워 주시기 바랍니다. 하하하 

우리 온누리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축복은 여기 계신 여러분들입니다. 장로님들 이렇게 진실한 권사님들이 많이 세워진 것이 하나님께서 온누리교회에 주신 축복이자 영적 재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도 많은 장로님들이 서로 이렇게 화평 가운데 서로 하나 되어서 교회를 섬긴다는 것이 우리 온누리교회의 가장 큰 영적 자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목사님들과 대화 나눌 때 우리 교회에 대해서 한두 마디 더 소개하려고 하는데, 이들 얘기하는 것 같아 그는 신실한 삶을 되게 많이 보냈어요. 그것이 늘 하나로 역사 섬기는 것이 어머님들의 가장 큰 축복이고 비결이다 이런 말씀을 합니다. 장로의 친구는 정치 제도로서 말하지 않고 성령의 은사라는 측면에서 설명하면 다스림의 은사입니다. 여러분들은 공동체 성도들 가운데 다스림의 은사가 있다고 인정을 받아 하나님께서 장로의 증인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다스림이라는 것은 더 많은 지식이나 어떤 세상적인 능력이 아니라 천국의 자세, 겸손, 하나님 중심의 시각, 이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는 그냥 리더십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장로라는 말의 한자로 길장자를 써서 연세가 많이 드신분으로 이렇게 세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리더십에 의해서 다스림의 은사가 확인이 되면, 젊어도 세워 지는 것이고, 교회가 배우에 출석하거나 연세가 많아지셔도 주님의 은사가 확인되지 않으며, 세워질 수 없는 것이 장로의 책임입니다. 만약 이 부분이 잘못되면 교회가 많이 어려워집니다. 성령의 은사로서 다스리는 나라가 다수 인격적인 방법과 또 그러한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분들이 그 교회의 장로님이 될 때, 아무리 목회자가 열심히 사역을 해도 그 교회는 발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다스리는 자, 그래서 어떠한 영적 어떠한 신앙적인 태도가 있어야 될 것인가? 오늘 말씀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가이드북에 나온 사무엘상 14장 1절에 7절의 말씀인데요. 한 절씩 보도록 하겠습니다."1. 하루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 무기를 들고 있는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이리와서 저쪽편 블레셋 초소로가자." 그러나 요나단은 자기 아버지에게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2. 사울은 기브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미그론의 석류나무 아래 있었습니다. 그는 600명즘 되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는데 3. 가운데는 에봇을 입은 아히야도 있었습니다. 그는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의 아들이며 비느하스의 손자이며 실로에서 여호와의 제사장이였던 엘리의 증손입니다. 그들 가운데 아무도 요나단이 나간 것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4. 요나단이 블레셋 부대에 가기 위해서는 길목 양족에 서 있는 험한 바위들을 건너야 했습니다. 하나는 보세스라 불렀고 다른 하나는 세네라 불렷습니다. 5. 그 가운데 한 바위는 믹마스를 향해 북쪽에 서 있었고 다른 하나는 게바를 향해 남족에 서 있었습니다. 6. 요나단이 자기 무기를 들고 있는 부하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이리 와서 저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의 부대로 가자. 여호와께서 도우시면 우리는 승리 할 수 있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7. 무기를 들고 있는 부하 청년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저는 당신과 함께 할 것입니다." (삼상14:1~7)

어떠한 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리더십의 모습을 요나단의 목숨을 거는 모험을 통해서 배워 봅니다. 참된 리더십의 음성은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방법, 또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분별하는 것입니다. 내가 보고 물러서야 하는 때인지? 나서야하는 때인지? 어느 때 나서고, 어느 때 물러서야 하는지? 어느 때 나서고, 멈추고 하는 것의  리더의 발자국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어떤 때 나서고, 어떤 때 자신을 뒤로 물러서게 하는지? 이 부분이 리더십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모습입니다. 요나단은 먼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을 물러서게 했습니다. 그때는 다윗이 등잘을 했을 때죠. 혜성처럼 강하게 나타난 이 다윗이라는 한 소년이 골리앗을 이기고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백성들이 노래했을 때 사울이 죽인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자는 만만이라 요나단은 다윗의 출연을 보고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축복했고 그리고 다윗을 보호했고, 내가 아버지 사울과 대립하면서 다윗 편에서 다윗과 사랑했다고 했고, 언약을 맺었다고 그랬어요. 후일에 요나단이 자신의 무기와 갑옷도 이 다윗에게 주었다라고 하는데 그것은 단지 다윗이 옷이 없어서 준것이  아니라 왕자로서의 자신의 옷을 다윗에게 넘겨줬다. 이것은 이런 메시지입니다. 이제 장차 이스라엘의 왕으로 다스려야 할 지도자는 내가 아니라 당신이다 라는 뜻입니다. 요나단은 스스로 기쁘게 내어준 것입니다. 참 놀라운 모습입니다. 

아버지 사울은 어땠습니까? 그는 이미 왕이 되어 있었고, 다윗이 사울을 제거하려고 쿠테타를 모의한 것도 아니고, 어떤 그런 움직임도 없었을 때, 자신에게 전혀 위협적이지도 않고 도리어 도움을 주고 있었던 자이였지요. 골리앗이 왔을 때 물리쳐 주었지요. 또 사울 옆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악신을 내 쫓았죠.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한 가지 백성들이 다윗을 좋아한다는 평가이기 때문에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버렸습니다. 얼마나 이 사울과 요나단이 정반대의 길을 걸었습니까? 요나단의 입장에서 보면 가만히만 있어도 아버지 사울이 다윗을 제거하면, 왕위는 누구에게 물려줄 겁니까? 자신에게 물려주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사울을 섭섭했을 것입니다. 내가 누구를 위해서 이러고 있는데, 너에게 왕을 지키기 위해서 다윗을 제거하는데, 너는 나에게 이렇게 하는것이 섭섭했을 겁니다. 여기에 하나님 중심인 사람과 자기 중심인 사람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원한다면 자신이 어떤 위치에 오르고 어떤 사람들이 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시점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그것을 분별하고, 그래서 그는 다윗의 선도 버리고 다윗을을 보호했고 축복했던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물러섰던 이 요나단이 얼마나 아름답고, 하나님의 보시기에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사울은 또 나서지 말라는데 나섰죠. 이제 3,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블레셋과 싸우러 나왔는데, 백성들이 두려워해서 다 도망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남은 군사 600명밖에 남지 않았어요. 그때 사무엘 초청했는데 늦게 오니까 자기가 사무엘을 대신해서 제사를 지내겠죠. 겉으로 볼 때는 신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제사를 이용해서 자신의 리더십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죠. 그래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라는 그 말씀이 나오도록 한 사람이 사울이죠. 마지막 날은 자신이 물러설 때를 알고 정확하게 물러서고, 그러나 동시에 나서야 할 때에 정확하게 나서야 하는 거에요. 오늘 본문은 요나단이 나타나고 그가 어려운 때에 어떻게 나타는가 보십시오. 오늘 14장에 배경은 이 블레셋과의 대립 가운데 이제 사울은 두려워해서 군사들과 함께 복장까지도 못하고 움츠려 있던 그 상태입니다. 제사를 지내면서 온갖 사기가 떨어진 사람을 일으켜 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던 그때. 그러나 군사들은 여전히 떨고 있었던 가운데에 마치 다윗이 골리앗 앞에 나섰던 것처럼 요나단은 담대하게 나서고 있습니다. 누구도 나서려고 하지 않은 이 때에 요나단이 나서고 있는 것 입니다. 어느 때에 요나단이 나서는 것입니까? 모두 그 뒤로 물러가 자기의 안전과 안녕을 생각할 바로 그때 그는 뛰어들고 있는 겁니다. 첫째로 그는 자신에게 없는 것을 탓하지 않고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그 자원을 알고 자신이 현재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다 한 사람 무기를 들고 있는 소년 단 한 사람입니다. 그에게 주어진 한 사람. 무기를 든 소년에게는 그런 무기도 없고, 요나단의 무기를 들고 있는 단 한 사람의 무기를 든 소년을 움직여서 함께 적진으로 뛰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모하고 모험인가요? 죽으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사울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했어요. 오늘 본문에 보면 아버지에게 왜 알리지 않았습니까? 알려봐야 얻을게 없는거 아버지에게 알리면 사울이 그래 잘났다 우리 아들 잘나셨다. 기도할 때 나가서 싸워야 되겠습니까? 너무 똑똑하니까 이제 나가지 않고 막았겠죠. 군사들이 교만이 항상 가지 인간적인 아버지를 마스크를 벗어서 알기 때문에 말하자는 거예요. 사울은 다윗이 나올 때에 어떻게 했습니까? 내 아버지라도 입고 해보라는 거죠. 남의 자식이니까 알아서 해보라고 그러는 거예요. 알아서 죽이고 이겨야 되는데 한번 해봐 보시고 한번 해봐. 근데 요나단에게는 이런 단계가 없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이렇수가 있느냐? 600명을 모아놓고 야단치지도 않았어요. 내가 갈 텐데 나를 사랑하면 나와 함께하자 호소하지도 않았어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무기를 든 소년하고만 떠난 것입니다. 얼마나 무모해 보이고 이것이 믿음의 패권들은 왜 자신에게 없는지 권위를 다하지 않고 또 두려움에 믿음의 부족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군사들을 파악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자신의 권한으로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 단 한 사람,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거 그 자원을 가지고 그냥 조용히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오래전에 되돌아보면 부교육자 시절에 다른 교회에서 사용하는 교구들을 구경자들하고 가끔 동기이 만나면 꼭 빠지지 않고 나오는 얘기가 담임 목사님 때문에 라고 합니다. 며느리들이 만나는 시어머니의 복이 굉장히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저는 담임목사님과 가깝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면 담임 목사님을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그 사람을 보면 자기에게 맡겨진 구역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마치 자기가 잘못한 것이 더 많은 책임을 맡겨두지 않아서 제가 실력 발휘를 못하는 것처럼 계속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자기 몫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나에게 더 많은 권한이 주어지지 않아서, 내가 체력 관리를 못한다고 하는 사람은 지금 맡겨진 것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틀림없어요. 요나단은 그 누구도 탓하지 않았어요. 누구도 비난하지 않았어요. 그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이였습니다.  그가 6절에 이렇게 말씀하시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6. 요나단이 자기 무기를 들고 있는 부하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이리 와서 저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의 부대로 가자. 여호와께서 도우시면 우리는 승리 할 수 있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 여호와께서 도우시면 우리는 승리 할 수 있다. 이거는 확신이 아니에요. 만일 하나님께서 도우시면 승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패배할 수도 있다. 그럼 내 이에 어쩌면 승리할 수도 있고 패배할 수도 있고 그러나 그 다음의 말씀을 보면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 이것은 100% 확신이에요. 요나단의 말을 보면 그는 이 두 가지를 구분 할 줄 알았어요. 그가 옆에 공허해 보이는 일을 나선 것은 한 두 사람은 지금 이 상대의 병력을 보면 얼마나 많은 병력에 와 있냐면 13장 5절을 보면 병거가 30,000이요, 마병이 6,000이요, 백성이 해변의 모래같이 많았다 그랬어요. 지금 이런 상황에서 단 한 사람 요나단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건너가려고 하고있는 거예요. 그런데 험한 바위가 있어요. 올라가기도 힘들어요. 뒤에 올라가다가 아마 위에서 화살을 쏟다든지 돌을 던지면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모한 도전을 하면서 그는 우리가 가면 반드시 이긴다. 그 확신을 가지고 가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성공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확신,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의 능력과 그분에 대한 전적인 확신. 이 말은 우리가 이렇게 도전해서 우리는 올라가다가 죽을 수도 있다.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가 아니에요. 이길 수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실패할 수도 있다고요. 하나님께서 도우시면 이길 수도 있다. 그럼 하나님이 안 도와주시면 우리는 죽는 거예요. 이것은 자신의 성공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의 방의 방식. 그러나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신다는 단 두 명이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상대방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우리를 이길 수 있다. 이것이 신실한 믿음입니다. 믿음은 내가 세우는 계획에 대한 과신이 아니라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조건 성공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나의 계획은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하시고자 한다면 하나님은 단 한 명의 사람이라도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승리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이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것이 믿음입니다. 요나단은 이 두 가지를 잘 구별했어요. 여러분 믿음이 좋다는 것은 내가 하는 일이 언제나 옳다라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고집이 믿음으로 포장될 수가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언제나 옳고 내가 하는 일은 성공해야 되고 잘 돼야 된다라는 그런 사실은 믿음이 아니라 고집이요, 자만이 될 수 있어요. 자기 본성에 맞은 것일 수가 있어 참된 믿음의 지도자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관심, 하나님과 함께하시며 승리 할수 있다는 하나님 그분에 대한 전적인 확신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요나단에게서 발견되는 참된 리더십의 모습은 7절에 잘 나타납니다. 7절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7. 무기를 들고 있는 부하 청년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저는 당신과 함께 할 것입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시고, 저는 당신과 함께하겠습니다. 당신의 마음대로 하십시오. 제가 당신과 언제나 함게 하겠습니다. 제가 만일 무기를 든 소년이었다면 이런 질문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살려 주신다는 약속을 하셨나요? 앞서 말했죠. 반드시 살려 준다는 약속이 없었습니다.  무기를 든 소년도 잘 할 것이고 그냥 그는 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았어요. 무기를 든 소년이 그냥 어쩔 수 없어서 상급자가 왕자가 가야 된다. 그래서 가는 것이라고... 그냥 두 사람이 함께 하자 이렇게 했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이 무기를 든 소년의 이 대답을 이렇게 한 줄의 말씀을 기록한 이유는 뭘까요? 요나단의 무기를 든 소년을 데리고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이 대답을 보시고 대화의 내용을 보면 당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하십시요 그러면 내가 마음을 같이 하겠습니다. 마음과 마음이 함께 연결되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참된 리더십은 포지션으로 직책으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격적인 영향력 감화력으로 일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우리 장로님들 장로의 직분으로 일하려고 하고, 우리 성도님들에게 인격적인 감화가 없고, 성도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내가 나는 장로님께서 마음에 원하시는 걸 결정하십시오. 내가 마음을 같이하여  따르겠습니다라고 하는 성도들의 지지와 응원으로 장로의 직분을 감당하셔야 합니다. 장로님의 직책으로 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그래도 교회 장로인데 그런 말은 영적인 고백이 아닙니다. 함께 있는 일하는 성도들에게로부터 장로님께서 마음에 있는 대로 하시면 제가 마음을 다해서 같이 따르겠습니다. 이런 고백을 우리 성도님으로부터 받은 장로님은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요나단 리더십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이 일하는 그런 사역이 공동체에 있는 겁니다. 직책이 아니라 직분 때문에 일하는 인격적인 사람 때문에 함께하는 동역자들이 있는 리더십. 요나단이 들어오지 않아 이 무기를 쏘면 어쩔 수 없어서 내가 안 가면 쳐벌을 받을까봐 두려운 게 아니라 마음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위험한 일에 또 생명이 보장되지 않는 그런 일에 기꺼이 헌신하는 뒷모습, 이것은 요나단의 믿음이 바로 옆에 있어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전달이 되었다는 이 점이 중요합니다. 정리하며 리더십은 누군가를 탓하지 않고, 누구를 겁주지 않고, 주변에 있는 분들에게 자신에게 현재 주어진 바로 그것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리더십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자신의 소견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확신, 마지막으로 함께 일하는 사람, 자신과 함께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고 마음을 같이하여 그들을 인격적인 감화로 움직일 수 있는 그런 리더십이 바로 요나단의 리더십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회 장로님들은 이런 모습으로 회복시켰던 온누리교회가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어 왔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변화한 리더십이 보여준 영성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또 우리 후배 장로님들에게 이어주시는 그런 귀한 장로님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함께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를 온누리 교회 장로로 불러주셨습니다. 직책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날마다 상고하는 장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직책으로 일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인격적 감화로 일하는 리더십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어느 누군가를 탓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신 그 일을 충성되게 감당하는 리더십들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앞에 우리 모두를 불러주시고 온누리교회의 장로로 기름부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장로님들을 세워주시고 온누리교회를 축복되게 인도하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 모든 장로님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극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 귀한 목사님 성에서 귀한 말씀을 듣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저희에게 필요한 원만한 리더십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로 그 자리에 쓸수있는 나를 주장하지 아니하고 섬기게 하시고 또 마음을 버리게 하여 주시고, 또 주님의 영광을 위해 지난 39년 온누리 교회와 함께해 주셨던 우리 귀한 장로님, 권사님이 주님을 사랑하는 속에서 온누리 교회 나아가 한국교회 가운데 대한민국 가운데에 주님이 기뻐하는 은혜로 온전히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1박 2일에 소풍을 주제로 하는 장로 수련회에 마음과 지혜의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축도 : 박종길 목사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충만하심이 요나단의  리더십을 닮기 원하는 우리장로님, 권사님, 온누리교회 위에 그리고 선교사님 가운데 이제로부터 영원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광고 : 김현주 장로

단체 기념사진 : 무대에서 플로어를 찍은 것이어서 장로 수련회라는 표시는 없다.

2024년 장로 수련회에도 내가 행사 기록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이 한장의 사진이 온누리 신문에 나갔다.

오전에 예배를 마치고 점심 시간이다.  행사장과 점심 장소인 프드 코트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이재훈 목사님께서 장로수련회에서 아는 사람과 함게 식사하는 분은 로잔대회 부족한 경비로 사용하도록 벌금을

내라고 하셨는데 조별로 또는 빈 자리를 찾아 함께 식사를 했다.  

함께 식사함이 참 즐겁다. 

식사 이후에 오후의 프로그램이 바로 또 진행이 된다.

각 본부장님 소개 영상이 있었다.

교감 선생님 말씀 : 이인용 서기 장로 환영 인사 

담임 선생님 설명 : 이석일 위원잘 장로 수련회 주제 설명

학급 이야기 1 : 전진국 대표 CGN 사역소개

 

장학사 특강 : 이의용 교수 특강

반별 자치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