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QT

이방인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 (갈2:1~10)

다이나마이트2 2009. 10. 9. 23:22

2009년 10월 9일 한글날

갈라디아서 2:1~10 같은 복음, 다른 역할

 

구원교리에 대한 생각들이 서로 달랐던 것 같다.

유대교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준수함으로 구원을 받는 다고 생각하고

유대주의자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율법을 준수함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전했는데

갈라디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지?

믿음 + 행위(율법의 준수나, 할례등등)로 구원을 받는지? 헷갈려하고 있었다.

이 문제 때문에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의 교회에 편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또 자기의 사도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사람에게서 난 것도 배운 것도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난 복음을 이야기했고

하나님의 은혜로 회심을 하였고 부름심을 받아서 사역을 한다고

택함을 입은 것과 부르심과 회심에 대한 간증을 했었다.

 

오늘 본문은 14년 후에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간 이야기로 시작을 한다.(1)

누구와 같이 올라 갔는가?

바나바와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갔다.(1)

 

왜 예루살렘에 올라 갔는가?

1. 계시를 인하여 올라갔다.(2)

2. 내가 이방인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확인받기 위해서 이다.(2) 

유명한 자들에게 제출하여 검증을 받은 모양이다.(2)

유명한 자들이란? 기둥같이 여기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 같은

예수님의 직계 제자들이고 예루살렘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이다.(9)

 

왜 이렇게 검증을 받았을까?

달음질 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하기 위함이다.(2) 아멘.

이렇게 서로 검증을 한다면 교파와 교단이 분리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검증의 한 모델이 소개되고 있다. 디도이다.

헬라인 디도는 억지로 할례를 받게 아니했다.(3)

 

유대인인 디모데는 할례를 받게했다.(행16:3)

그러나 헬라인인 디도는 할례를 받지 않았다.(3)

 

왜 그랬을까?

바울의 위선적인 행동인가? 그렇지 않다.

사도 바울은 할례를 반대한 것도 아니였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의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할례를 받게 한 것이다.

유대인을 향하여 복음의 문이 열려 있도록 하기 위해서 행한 일이다. 아멘.

 

디도의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은 헬라인이 아니라 유대주의자들이다.

구원의 조건으로 할례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를 한 것이다. 아멘.

할례문제는 복음의 본질적인 진리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울의 표현대로 라면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기 위함이다.(5) 아멘.

 

이렇게 사도 바울과 예루살렘에서 만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과의 사이에

복음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음을 서로 확인한다.(6)

예수님으로 부터 직접 배웠던 예수님의 제자들인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도

사도 바울에게 더하여 준 것이 없이(6) 특별히 더 가르쳐야 할 것은 없었다.

 

다만 서로 확인한 사항은 있다.

역할의 분담이다.

베드로는 할례자에게(7) 할례자의 사도로(8)

바울은 무할례자에게(7) 이방인의 사도로(8)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아멘.

 

동일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복음은 베드로에게나 바울에게나

비교할수는 없겠지만 나에게도 동일한 복음이다.

 

베드로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나

바울을 통하여 역사 하시는 하나님이나

나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은 능력을 행하신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

이방인 가운데서도 복음 전파하는 바울의 모습

또 예루살렘 지도자들에게 검증받는 모습

이방인에게 전한 복음을 확인받는 모습을 봅니다.

오로지 복음 밖에는 몰랐던 사도 바울

전하는 대상과 지역은 다른지 몰라도

동일한 하나님의 소명을 따라 헌신하는 바울을 봅니다.

서로 교제의 악수를 하는 모습을 봅니다.

복음 안에서 하나되고 일치되는 모습을 봅니다.

나도 이런 평화의 사도 화해자 되게 하옵소서.

방법은 달라도 오직 복음 전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