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하라, 순교로써 (계12:7-12, 계13:1-10) 2025.04.27
장애우 주일이라서 사랑부 치체들이 선생님과 함께 특순을 했는데 박수가 끊어지지 않는다.
저항하라, 순교로써 (계12:7-12, 계13:1-10) 말씀: 이재훈 목사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온통 [전쟁터]입니다.
[세상]은 사상과 이념에 휩쓸려 싸우지만, [영]적인 세상은 사단과 싸웁니다.
그러한 세상에 사는 우리는 “하나님과 사단의 전쟁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제 일곱 번째 나팔이 불려 질 때, 하늘에서 큰 음성을 듣게 됩니다.
11장 15절에, “세상 나라가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됐으니, 그분이 영원토록 왕 노릇하실 것이다.“는 말씀에서,
”[세상 나라]가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었다.“는 선언입니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떠보면, 여전히 [요한]은 유배되어 있고,
여전히 그리스도의 통치를 거부하고, 대적하는 로마 제국의 권력이 보일 뿐, 세상은 바뀐 것 같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그 해답이 12장과 13장에 나옵니다.
[요한]은 12장에서, 또다시 하늘에서 큰 음성을 듣습니다.
12장 전반부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가 확립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①아이를 잉태하여 해산하는 한 여자와
②그 여자가 낳는 아이를 삼키려고 하는 큰 [용]이 나타납니다.
이 장면에서, ①생명을 탄생시키는 한 [여인]과 ②그 생명을 죽이려는 [용]은 대조적인데,
[용]이 돌진하여 아이를 삼키려는 순간에, 아이를 구출하는 데 성공하여,
[아이]는 하나님 보좌 앞으로 올려 졌고, [여자]는 광야로 피신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장소를 얻게 됩니다.
그러니까 [용]은 자신의 먹이를 빼앗긴 셈이 됩니다.
▶여기서 [용]이 왜, 아이를 삼키려고 했는지?“ 궁금합니다.
그 이유가 5절에 나오는데, ”여자가 아들을 낳았는데,
그 사내아이는 장차 쇠 지팡이로 만국을 다스릴 뿐입니다.“(계12:5)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생각나게 합니다.
[시편 2편]에 예언했던, 바로 그 [메시아]이기 때문입니다.
[사단]이 여자 아이를 죽이려 한 것은 “아이가 장차 자신을 무너뜨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2편 8- 9절에, “내게 구하여라. 그러면 내가 이방 민족들을 네게 기업으로 주어, 온 세상이 네 소유가 되게 하리라.
너는 그들을 쇠 지팡이로 다스리며, 토기장이가 자기 그릇을 부숴버리듯, 그들을 부수리라.”(시2:8~9)
▶쇠 지팡이로 부숴버릴 수 있는 분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세상에 오셔서, “사단을 무너뜨린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그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아이를 죽이려고 한 것이죠.
실제로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 잔인한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탄생]은 그 자체가 우주적인 전쟁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사단과의 싸움에서 일어난 엄청난 사건입니다.
창세가 3장 15절에, [아담과 하와]가 타락 이후에, [뱀]에게 주신 말씀인데,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네 자손과 여자의 자손 사이에 증오심을 두리니,
여자의 자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하고,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는 말씀에서,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서, [너]는 누굽니까? [뱀]이죠.
그 둘 사이에, 적대심을 두심으로써,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고, 궁극적으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치명타를 주어서, “사단을 진멸시킨다.”는 것이고,
그러나 [여자]는 “뱀으로부터 발꿈치를 상하게 된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부활하심으로 인해서,
그 “남겨진 상처”가 [십자가]이고, “그 상처가 흔적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구원을 위해 고난 받으신 [사건]은
”①하나님과 ②사단 간의 전쟁“에서 일어난 것이고,
[십자가]는 ”예수님의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사단에 대한 승리“인 것입니다.
이것이 [땅]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일어난 사건은 7절에서 또 다른 시각에서 말씀합니다.
1- 6절은 [땅]에서 일어난 사건이고,
7절부터는 “[하늘]에서 일어난 사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7- 9절에, “그때 하늘에는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대적해 싸우고,
용도 이에 맞서 자기의 사자들과 함께 싸웠으나, 용이 이기지 못했으므로, 그들은 하늘에서 더 이상 있을 곳이 찾지 못했습니다.
큰 용, 옛 뱀 곧 마귀와 사탄이라고도 하는 이, 온 세상을 현혹시키는 이가 쫓겨났습니다.“(계12:7~9)
이 말씀은 하늘에서 전쟁이 일어났는데, [천사]들이 [용]과 싸워 이김으로써,
”[하늘]에서는 있을 곳을 찾지 못해, 이제 [땅]으로 쫓겨났다.”는 말씀이고,
쫓겨난 [용]은 “땅에 묶인 운명”으로 전락하여, 이번에는 “여자의 어머니를 공격”합니다.
사내아이를 낳은 [여자]를 쫓아가서, 뱀이 자기 입에서 여자의 등 뒤에 물을 강같이 토해내어,
그 물로 그녀를 휩쓸려 버리려고 했으나, [땅]이 여자를 도와서 “모든 강물을 삼켜버림”으로 여자를 돕게 됩니다.
그러니까 [용]이 두 번째 먹이를 놓친 셈입니다.
이제 더 이상 공격할 대상이 없어진 것 같지만, 그러나 공격할 대상이 남아 있습니다.
▶그 대상은 누구일까요?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17절에,
“그러자 [용]이 여자에게 분노를 품고, 여자의 후손에 남은 사람들,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의 증거를 붙잡고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전쟁을 하려고 떠나가, 바닷가 모래 위에 섰습니다.”(계12:17)
여자가 낳은 아이, 곧 [메시아]를 무너뜨리지 못한 [용],
그리고 여자마저 무너뜨리지 못한 [용]은 여자의 후손에 남은 사람들,
그들은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의 증거를 붙잡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여자의 아이와 여자는 무너뜨리지 못했지만,
여자의 후손에 남은 사람들, 곧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합니다.
그러니까 “어린 양을 따르는 사람들”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에 함께 참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단]은 [예수님]에게 공격이 실패했지만,
①“그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을 향해,
②그리고 “머리로 삼은 [교회]”에 대한 공격은 “계속해서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생기고, 교회가 때로 분열하고 갈등하고,
여러 가지 구설수에 오르지만, ①그리스도인들과 ②교회는 그런 공격에 승리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단과 싸우는 군사들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은 ”요한이 들었던 큰 음성을 우리도 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11- 12절에, ”그들은 어린 양의 피와 그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 인해, 그를 이겼고, 죽기까지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안에 거하는 사람들아,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에 재앙이 있을 것이니,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알고, 분을 품고 너희에게 내려갔기 때문이다.“(계12:11-12)
[마귀]가 이제,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분](화)를 품고, 땅에 내려와, 지금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데,
그리스도인들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마귀는 이기지 못한다.”는 거예요.
▶왜, 그럴까요? 그것은 어린 양의 피와 말씀을 붙잡고 있는 이들은 죽임 당하는 것 같지만, “그들은 승리할 것이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불을 품고 대들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순교를 통해, 승리하게 됩니다.
여기에 “그를 이겼다.”고 단정하는 것은 “죽기까지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는 말씀이고,
“죽기까지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는 순교”를 통해, “사단의 공격을 이겼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로마 제국의 권력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무너뜨리려고 노력하였지만,
그야말로 사단은 [용트림]을 하였지만, 결국에 “순교자들은 이기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순교]가 최후의 무기이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 “승리로 이끌었던 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어린 양이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하였기 때문에, “즐거워할 수 있다.”는 겁니다.
13장으로 장면이 바뀌면, 거듭 패배를 경험한 [용]은 이제 바닷가에 서서, 공격을 준비하는데,
바다와 땅에서 각각 한 짐승을 불러내어, 이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성도들을 공격하게 합니다.
①[용]을 도와주려고 하는 ②바다에서 나온 짐승과, ③땅에서 나온 짐승은 모조품과 같습니다.
[바다의 짐승]은 표범과 곰과 사자를 합쳐서 만들어진 모습이고,
[땅의 짐승]은 참되신 어린 양을 본떠 만든 “가짜 어린 양”입니다.
이것은 [삼위일체]를 가짜로 본떠서 만든 모방품입니다.
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본 따서 가짜입니다.
13장 4절에 보면, “[용]이 그 [짐승]에게 [권세]를 주자, [사람]들이 [용]에게 경배를 했습니다.”고 하는데, 웃기는 얘기입니다.
가장 섬뜩한 것은 성령님께서 인치는 사역을 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의 이마에 짐승의 숫자 [666]을 표를 받게 하는 것입니다.
13장 마지막에 [666]이 나오죠. 사람들은 여러 가지 해석을 하지만,
[666]은 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짐승의 숫자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7]이라는 완전한 숫자에서 하나씩 뺀 것”이고, 이것은 불완전한, 사탄의 숫자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666]을 히브리 알파벳 문자의 숫자를 넣어서 만들면, [네로]라는 이름이 되어서,
[666]은 요한계시록 시대에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던 네로 황제”를 가리켰지만,
오늘날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 또는 “사단의 종노릇하는 모든 세력들”을 의미하죠.
그러니까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은 그 짐승에게 경배하게 되고,
그리고 그 짐승이 주로 하는 [일]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13장 10절에, “누구든지 사로잡힐 사람은 사로잡힐 것이요, 누구든지 칼로 죽임을 당할 사람은 칼로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있습니다.”(계13:10)
이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에 처하게 된다.”는 문자적인 예언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칼로 죽임 당하는 상황에서, 승리하는 자는 누구일까요?
그 사람은 “인내하고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이, 곧 이기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인내와 믿음]은 엄청난 에너지와 힘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칼을 맞이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희생을 받아들이는 것이 [순교]입니다.
그러니까 [순교]는 하늘의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짐승들이 사용하는 지상의 무력과 힘을 가지고 대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오늘 12장- 13절을 통해,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늘에서 쫓겨난 [용]이, “두 짐승과 함께 벌리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고,
그 짐승의 세력이 ”어린 양을 따르는 이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짐승의 세력에 저항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힘과 폭력이 아닌, ”[순교]로서 저항하라.”는 것입니다.
[순교]는 수동적인 저항이 아닙니다.
[순교]는 아주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것입니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짐승이었던 로마 제국의 권력 앞에서, 소수의 힘없는 이들이었던 성도들은
어린 양의 피로 순교함으로 그들은 이기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항함]으로 이기는 [승리자]가 되었듯이,
죽음에 이르도록 충성되게 하나님을 섬김으로 이기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활동하는 사단의 세력에 맞서서,
우리는 저항하고,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