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혜사 성령/ 요한복음 14:16-20, 요 16:7-11
2018년 12월 10일 월요일
1. 보혜사 성령/ 요한복음 14:16-20, 요16:7-11,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오늘부터 40일간 새벽기도를 시작합니다.
“거룩하신 성령님, 내 안에 오십시오.“라고 우리가 간절히 기도할 때,
성령님이 우리 안에 찾아오실 것입니다.
이렇게 40일 간 집중적으로 기도할 때, 그런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하심”이 우리 에게 임하실 것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면, 우리는 성령 충만함이 가득 차고,
우리가 믿고, 기도하면, 우리에게 성령의 바람이 불어올 것입니다.
이번 집회는 ”성령의 바람, 불게 하소서”라는 주제로,
우리가 시간을 정해 모였사오니, 우리에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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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요한복음 3장 8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듣지만,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도 모두 이와 같다.”(요3:8)
여기서 예수님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바람”에 비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연에 있는 바람을 비유하여, “영적 진리”를 설명하십니다.
바람은 우리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바람은 우리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습니다.
바람이 부는 것을 우리가 막을 수도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하심도 이와 같습니다.
비람은 임의로 부는 것 같아도, 무질서하게 부는 것이 아니고,
항상 어떤 조건에 따라 일정한 법칙이 있듯이, 성령의 역사도 이와 같습니다.
▶ 성령은 무엇입니까?
1. 첫째로, 성령은 “예수님의 영“이시기에, 하나님 나리가 임하시는 일정한 법칙이 있습니다.
성령은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고, 복음이 전해지는데, 성령이 움직이셔야 가능해 집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런 ”성령의 법칙“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성령님을 움직일 수는 없지만, 성령의 법칙을 깨닫고, 그 법칙에 따라,
우리는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2. 두 번째로, 우리가 자연의 소리를 듣고 느끼듯이, 성령님의 소리도 듣고 느껴야 합니다.
우리는 바람이 불면 느낄 수 있듯이, 성령님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제가 군대에서 장교훈련을 받을 때, 깜깜한 동굴 속에 고립되었을 때, 어떻게 빠져 나가야 하나?”를
배웠습니다. 그것은 손에 침을 묻혀서, 바람의 방향을 찾아 입구를 찾아야 합니다.
성령님이 어떤 바람을 불게 하실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그걸 알아야, 성령님을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그걸 모른다고 그 사실을 믿지 않으면, 그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3. 세 번째로, 성령은 어디로 가는지? 그 방향을 예측할 수 없지만,
그러나 성령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고 움직이면, 우리는 동행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바람과 같이 움직이므로,
우리 모두 그런 “성령의 바람”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진리“를 깨닫기 위하여, 먼저 ”성령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번 40일 새벽기도를 통하여, 집중적으로 성령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잘못 이해하는 게 있는데, 성령에 빠지면, 이상해지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정신으로 믿음 생활 하는게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은 ”성령의 이끌림“으로 유지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제 정신으로 사는 게 아니라, ”성령의 이끌림“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면, 광신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이끌림”으로 정상적으로, 제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공생애 과정에서 예수님이 보여 주신 것과 같이,
우리도 “성령의 이끌림”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도신경에서 우리가 고백하는 것과 같이, “성령을 믿사오며-----“
여기서 아쉬운 것은 성령의 고백이 너무 짧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님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사도신경을 입으로만 고백하지 말고, 우리가 성령님과 함께 생활해야 하고,
우리에게 잠시라도 ”잊혀진 성령님“이 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나오는 성령님에 대한 설명을 잘 읽고, 묵상하며,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다른 보혜사를 보내셔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요14:16)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내가 가면, 또 다른 보혜사가 오신다.”고 소개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또 다른 보혜사”란 무엇입니까?
보혜사는 헬라어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
한자로 풀어 보면, “늘 곁에서 보호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신다"고 했는데, <또 다른>은 무슨 의미입니까?
<또 다른 인격자>, <또 다른 대언자>를 말하며, 나와 똑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인데,
그런 보혜사가 와서,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또 다른 보혜사는 누구입니까?
그 분은 [성령님]이시고, 그 성령님은 “또 다른 예수님“입니다.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다시 오겠다." (요14:18)
▶여기서 ”다시 오겠다”는 말씀은 어떤 의미입니까?
그것은 “보혜사 성령님으로 다시 오신다.“는 의미입니다.
고아의 의미를 상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우주의 고아처럼 모든 고민을 혼자서 떠맡는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고아가 아닙니다.
외로움과 고독은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예수 믿는 사람의 믿음 생활은 고아같이 되면, 안됩니다.
허무함과 불안함, 그리고 외로움은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사전에는 없는 단어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사랑과 기쁨, 그리고 행복만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곁에는 늘 보혜사 성령님이 있어야 하고, 외롭지 않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풍족해도, 혼자 버려두면 외로운 법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보혜사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6장 7절 말씀에서 특이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너희에게 보혜사를 보내 주겠다.”(요16:7)
▶ 왜, 예수님이 떠나가는 것이 "우리에게는 유익하다"고 합니까?
예수님이 3년을 같이 있었는데, 오래도록 같이 있으면, 더 좋을 텐데,
갑자기 ”떠나야 유익하다”고 하시는 말씀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 속에서, “보혜사 성령님이 오셔야 된다.“고 판단하셨고,
그래야 근본적으로 달라지 게 될 것으로 확신하셨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 유익하다“고 말씀하신 거예요.
세상에서는 떠나는 것이 슬픔이지만, 성경적인 것은 "떠나가면 유익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또 모세에게도 "애굽을 떠나 약속한 땅으로 가라"고 명령했습니다.
이처럼 크리스천은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사람>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다가 천국으로 떠나야 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육체를 본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육체를 본 적은 없어도, 더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 분을 믿는 성도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 우리가 본적이 없는데, 왜 믿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성령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성령님 안에 예수님이 계시니까, 우리는 보혜사 성령님을 믿는 거예요.
예수님은 인간의 육신을 입으셨기에, 그가 활동하는데 제한을 받았지만,
성령님은 언제, 어디서나, 제한을 받지 않고, 행동을 하십니다.
성령님은 ”영“으로 오셨기 때문에,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고 ,공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 분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는 동시 다발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떠나가고, ”보혜사 성령님이 오시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판단하시고,
그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시절에 사도들이 모일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과 같이,
우리가 40일 새벽기도를 드릴 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길 바랍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서 함께 생활 할 때에,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하시고,
성령님, 언제나 우리와 함께 동행 하여,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