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교회관련

고난주간 심야예배 첫째날 (2016.3.21)

다이나마이트2 2016. 3. 21. 23:57

 

 

 2016년 3월 21일(월)~3월 25일(금) 오후 9:00~ 2016 고난주간 심야 예배가 있었다.

 

 양재 사랑홀에 십자가가 3개 장식이 되어 있었다.

 

사랑홀 로비에도 3개의 십자가가 준비되어 있었고 고난의 신비 베너가 붙어 있다.

이곳은 자신의 죄를 적고 회개 할 수 있는 회개의 십자가이다. 준비된 스티커에 내용을 적어서

이곳에 붙인다. 나중에 일괄 수거하여 소각처리하는 것으로 안다. 

 

저녁 8시 10분 내가 속한 산본안산공동체와 강남C공동체, 서초C공동체 3개 공동체가

연합으로 안내와 주차와 헌금수집과 헌금계수를 담당한다. 예배 안내위원들 기도모임이다.

만나시는 분들 너무나 반갑지만 이번 한 주간은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입으로 인사하지 말고 눈으로 얼굴로 인사하라는 당부의 말씀이 있다.

 

개인 기도시간 이후에 ORGANIST  정경미 성도님의 파이프 오르간 연주가 있었다.

152장 귀하신 예수, 141장 웬일인가 날 위하여, 135장 강보리산 위에 3곡이 파이프 오르간을 통해서

연주 될 때에 다른 어떤 예배 보다 감동이 있었다.

위 사진은  BLOSSOM의 챔버 연주이다. '무엇이 변치 않아 (십자가)'라는 곡을 연주하셨다. 

 

이상진 목사님과 양재 권사회 찬양팀과 챔버팀의 연주로 '예수 나를 위하여'.

'만왕의 왕 내 주께서', '보혈을 지나' 이런 찬양을 드렸다.

 

 대표기도 이동희 장로님

 

 특순 "십자가와 나" 양재 권사회 찬양팀의 특순이 있었다.

 

성시교독 (교독문) 교독문 시편 51편 윤길중 목사 사회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서빙고 영상으로 중계가 시작되고 이재훈 목사님께서 강사 소개를 하셨다.

고난 주간은 고난 받으신 예수님을 불상히 여기는 주간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죄를 돌아 보며 왜 십자가에 예수님이 달리셔야 했는지 그 사랑을 묵상하는 시간이다.

기억에는 2가지가 있다.

1, 추억으로서의 기억이 있다. 정보로 남아 있는 기억이다.

2. 체험적인 기억이 있다.

십자가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를 움직이는 역사요 생명이다.

영광받으셔야 마땅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하나의 신비이다.

지난 40일 작은 예수 새벽기도회에 오셔서 말씀 전해 주셨던 산마루교회 담임 목사님이십니다. 

참된 교회의 모습을 추구하고 보여주는 귀한 목사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연결시켜 주신 이주연 목사님을 소개합니다. 앞으로 자주 보시게 될 것입니다. 

 

 말씀선포 "십자가와 침묵의 신비(1)' 이주연 목사 (산마루교회 담임)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자리이지만 이 말씀을 안드릴 수 없어서 드립니다.

지난 조선일보의 기사를 많은 분들이 보셨겠지만 이재훈 목사님께서 산마루교회의 부목사로

하신다고 하셨으니 이주연 목사는 어떻게 된거냐? 사례는 얼마나 해야 할지 걱정이 됩니다.  ㅋㅋㅋ

마치 다윗이 사울 밑으로는 오는 것 같습니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요' 하면 걱정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제가 온누리교회 부목사가 되겠다 하는 것입니다.

저를 온누리교회 부목사로 받아 주시면 목욕탕, 빨래터, 노숙인 사업 다 잘 될 것 같습니다.ㅎㅎㅎ

그 동안 마포공동체에서 2번 방문해 주셨고 사랑의 농장에도 봉사해 주신다고 하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이 자리에 제가 은혜를 많이 받습니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 가지고 왔습니다만 여러분이 헌금해 주신 1억 5천 3백만원 그리고 또 2천만원

또 노숙인들이 모은 헌금 3억 가까운 금액이 여기에 있습니다.

제가 농사 지을 때 어떤 때는 5~6시간 많게는 10시간씩 일을 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노숙인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이렇게 많은 금액을 후원해 주시는 것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내가 고생했으니 하나님이 내게 보내 주셨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면 내가 받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많이 회개 했습니다.

주님의 고난으로 내가 죄사함을 받고  용서함 받고 자유함을 얻었는데 영생을 얻었는데

내 고난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에 빚진 마음으로 내가 마땅히 행해야 하는 일인데

내가 이렇게 수고하고 고생했으니 하나님이 보내주셨다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신앙의 근본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많이 회개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오직 주를 위하여 살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첫째는 죄인 가운데 가장 큰 죄인이라고 고백했고

둘째는 사랑에 빚진자라고 생각하고 항상 기뻐하고 감사했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의 고백을 생각하면서 이시간 회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기 있는 통장을 보면서 이 헌금은 그리스도의 피로 산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가 묻은 헌금이다 생각하니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언하고,

고난 속에 담겨진 구원의 삶을 은총으로 생각하며 책임을 져야 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저는 오늘 십자가와 침묵의 신비에 대하여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왜 십자가가 필요한 것인가? 왜 보혈이 필요한 것인가? 없으면 안되는 것인가?

왜 죄 사함을 받는데 피가 필요한 것인가?

만일 우리가 왜 십자가, 보혈, 죄 사함에 피가 필요한가를 알지 못한다면

십자가의 고난은 묵상 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불순종을 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영원한 하나님으로부터 단절이 되면 유한한 존재가 되어버리고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은 죽음의 존재가 죽지 않는 존재로 바뀜을 의미합니다.

죽음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그와 동일한 댓가를 지불해야만 합니다.

생명을 찾으려면 생명의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명과 바꿀 수 있는 대등한 가치를 가진 것은 없습니다.

오직 생명만이 생명과 맞바꿀 만한 대등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속죄제는 모두다 피를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속죄 제물은 흠없는 숫송아지의 피를 바쳐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에서 회복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흠 없는 제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족장들이 죄를 지었을 때 흠없는 숫송아지를 제물로 드렸습니다.

평민들이 죄를 지었을 때 흠 없는 암염소의 피를 드렸습니다.

모든 인간의 가치만큼 생명만큼 가치있는 것을 댓가로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피를 흘려 댓가를 지불하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황금을 바쳐서, 인간을 재물로 바쳐서, 모든 인류를 구원 할 수 있을까요?

흠없는 재물로 사용되기에는 인간은 너무나 부족한 존재입니다.

탐욕, 욕심, 우상숭배의 마음, 음욕, 명예욕....없는 사람이 여기 있나요?

재물로 사용 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부족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택하신 방법은 하나님의 아들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어떻게 죄 사함을 받고, 죄 씻김을 받고,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 될 수 있는가?

돈으로 하면 좋겠는데 돈으로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흠없는 재물로 십자가에 달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다른 구원의 방법은 없다.

 

두번째 유혹에 대한 것입니다.

모든 유혹의 중심에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단절 시키려는 사단이 있습니다.

최초의 유혹은 아담과 하와의 유혹입니다. 사단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 시키려고 합니다.

뱀이 여자에게 와서 말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말라 하시더냐?"(창3:1)

여자가 뱀에게 대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다"(창3:3)

뱀이 여자에게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3:4)

이것이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가져오고 불순종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유혹에 넘어 갈 때 자기 자신을 살펴 보아야 하는 것은 불순종이 별거 아니기 때문입니다.

쉽게 따먹을 수 있고 쉽게 넘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목숨 걸고 죄 짓지 않습니다.

유혹에는 쉽게 넘어 가지만 결과는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이 이루어 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은 죽음입니다.

죄 짓는 것은 너무나 쉽습니다. 작은 실수도 엄청난 댓가를 지불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죄인 된 까닭은 죄 짓는 것이 너무 쉬워서 그렇습니다. 죄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피의 제사 희생 제물에 대하여 이야기하면 우리를 공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죄는 자기가 짓고 죽는 것은 왜 짐승을 죽이나 합니다.

기독교는 사람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하는 잔인한 하나님 이라고 비판합니다.

겉으로보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리게 한 동기가 무엇입니까?

피 외에는 생명을 구원 할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생명으로 지불하는 방법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방법이 없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서 누군가는 희생이 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나 때문입니다.

둘째는 그가 누구이십니까? 하나님 자신입니다.

잔인한 하나님이 아니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기독교가 잔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자기 몸을 버려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이 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에 있습니까?

거룩하신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완전하신 하나님, 죄 없으신 하나님이

사랑 때문에 죽음 가운데 내어 버려 두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사랑이고 구원의 사랑입니다. 아멘.

 

오랜 시간 목회를 하면서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습니다.

어린 딸이 소아암 환자로 세상을 떠난 아이 엄마의 울부짖음을 잊을 수가 없다.

'나를 대신 데려가 주시고 이 어린 아이를 살려 주세요' 기도하던 울부짖음이 어미의 마음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 보다 더한 것이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다. 모욕, 채찍, 피흘림, 목마름, 조롱, 모든 것을 다 견디시고

무덤까지 내려 가셨다. 이 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있는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몸으로 느껴야 한다.

 

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채찍에 맞고 피를 흘리셨는데 그 빚진 마음이 없다면

내가 이 만큼 했는데 성도들이 나를 이 만큼 도와야 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여러분이 낸 헌금 그리스도의 피가 묻은 헌금이다.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이런 십자가의 고난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 때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올 때에

노숙인을 끌어 안는것, 원수된 자를 품어 주는 것이고, 도덕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렇때 그리스도의 사랑이 능력이 되고 십자가의 도가 능력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도덕과 관념이 아니라 살아 역사하시는 실재이다.

십자가의 사랑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해야 하는 이유이다. 아멘.

 

<십자가의 5대 혹은 7대 명제>

1. 십자가와 부합하지 않는 구원은 기독교의 구원이 아니다.

2. 십자가와 부합하지 않는 영생은 기독교의 영생이 아니다.

3. 십자가와 부합하지 않는 천국은 기독교의 천국이 아니다.

4. 십자가와 부합하지 않는 사랑은 기독교의 사랑이 아니다.

    온누리교회는 정말 사랑이 많은 교회 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사랑이 없다면 끼리끼리 친목 모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입니다. 그곳에 열매가 없습니다. 

    십자가를 경험한 사랑의 은혜는 열매가 다릅니다.

5. 십자가와 부합하지 않는 진리는 기독교의 진리가 아니다.

6. 십자가와 부합하지 않는 영광은 기독교의 영광이 아니다.

    중세 때에 얼마나 기독교가 타락을 했었나?

    성직자들이 먹고 마시고 누렸기 때문에 타락이 왔다.

    유럽에서 중세 추기경의 무덤을 보았다.

    그리스도가 자신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쓰임받고 있는 모습이다.

7. 십자가와 부합하지 않는 선교은 기독교의 선교가 아니다.

    초기 기독교의 한국 선교사들은 가마 타고 선교하지 않았다.

    고급차 타고 선교하지 않았다.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할 자들이 그들과 같이 고난 받지 않으면 안됩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는 선교는 제국주의 선교이다.

 

오늘 성경 말씀 본문 4절과 5절에 보면

대제사장들이 여러가지로 고발을 해도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없으셨다.(4)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라니라(5)

예수님의 침묵을 볼 수 있다. 자기에게 매우 불리한대도 침묵하신다.

대답이 없으심, 침묵하심 이것이 예수님의 힘이고 능력이다.

십자가의 영적인 정수를 터득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바로 이것이다.

내일 이어서 또 말씀을 보겠습니다.

 

 합심기도 이상준 목사

하나님은 잔인한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지극히 사랑하사 그 생명까지 내어 주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깊고 크신 사랑이 우리들 가운데 가득 부어 지게 하옵소서.

나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포기하지 않는 그 사랑을 붙잡고 나아가게 하옵소서.

기독교의 기본적인 명제 십자가와 부합하지 않는 구원, 사랑, 진리, 영광, 선교는

기독교가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십자가로부터 출발하게 하옵소서.

섬김과 부르심의 자리에도 십자가의 사랑에서부터 출발하게 하옵소서.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교회의 존재 본질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과거 의식속의 하나님이 아니라 현재에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고난의 신비를 체험하고 경험하는 시간되게 하옵소서. 아멘.

 

 봉헌기도와 축도 윤길중 목사

 

 사랑홀 로비의 모습 자신의 죄를 적고 회개 할 수 있는 회개의 십자가가 설치 되어 있다.

고난 주간 나무 십자가 목걸이 착용과 한끼 금식에 참여해 달라는 광고가 있었다.